세상은 넓고, 한인 사회는 참 좁다!

by blandina

나는 지금까지 커피와 베이커리 관련 일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 총괄 매니저를 맡게 된 매장은 제품 주문부터 세일까지


모두 내 책임이다.


사실상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내 자랑 같지만,


나는 물건을 정말 잘 고르고, 또 잘 판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어느 날 친오빠와 영상통화를 하다가,


오빠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좋은 물건을 많이 사봤고,


돈을 쓸 줄 아니까 소비자 심리를 잘 알지.


그리고 어릴 때 디자인 하고 싶어했잖아?


감각이 남다른 거야.


돈도 써본 사람이 쓰는 거야!


요즘 K-POP도 작아 보여도 결국 코 묻은 돈으로 성공하는 거야.”


실제로 매장에 있다 보면 하이스쿨이나 대학생들이 와서 10~15불 정도를 쓰는데,


이렇게 모인 매출이 오픈 5개월 만에 100만 불을 넘겼다.



사실 회장님의 처음 계획은 놀고 있는 매장을 활용해서 편의점이나 하나 열어두고,


한 달에 2만 불 정도 소소하게 벌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몇 달 만에 1년치 매출을 찍어버리니 난리가 났다.


-인연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내가 구매와 세일을 모두 담당하다 보니 매일 다양한 업체의 세일즈들과 만나고,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그들과 꽤 친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분,


일본계 JFC라는 회사의 세일즈 분은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주셨다.


내가 모태신앙이지만 지금은 가톨릭을 다닌다는 얘기를 하자,


퇴근 시간마다 전화로 전도를 하시기도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좋은 마음이라 생각하며 관계는 계속 좋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문서를 받고 돌아가시던 중 퇴근길에 전화를 주셨다.


그런데 정말 뜬금없이,


“매니저님, 중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라고 물으시는 게 아닌가.


살면서 어디 살았는지,


어느 대학 나왔는지는 들어봤어도 중학교를 어디 나왔는지 물어본 건 처음이었다.


그분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중학교를 물어본 게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서울 혜화동에 있는 서울사대부중 나왔어요.”


그러자 그분이 갑자기 흥분해서,


“맞아요 맞아! 내가 생각했던 그 학생이 맞았어!!”


그때부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세일즈 분은 서울대 체육학과 출신으로,


4학년 때 우리 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오셨었다고 했다. 우리 반을 맡은 건 아니었지만,


그 시기가 신체검사 기간이었고 키 측정을 담당하셨단다.


나는 중3 때 키가 168cm로,


반에서 마지막 번호인 41번이었다.


그 번호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도 부활의 ‘사랑할수록’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건 당시 우리 반 ROTC 실습 선생님이 불러주셨던 노래라서다.


이렇게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중학교 시절의 기억 속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일곱 다리만 건너면 대통령도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맥이란 결국 그만큼 얽히고설켜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오피스에 인력을 더 뽑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ㅇㅌㄹ라는 회사에서 인벤토리 담당자를 뽑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짐을 덜 사람이 생겼다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출근 첫날 그분을 보자마자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 또 그분과 엮이게 되는구나.”


정답이었다.



그 박 매니저님은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내 밑으로 오셨고,


사실은 미국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님이셨다.


평일에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목사님은 처음부터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셨다.


“매니저님, 이걸 혼자서 4개월이나 어떻게 해오셨어요? 저는 못해요.”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신세 한탄을 했다.


“새해 첫날부터 독감에 걸려서 화장실도 못 가고,



20개 팔레트를 혼자 스탁하고 인벤토리 정리하고 보고하고…


정말 혼자 다 했어요.”


그날부터 우리는 동지애로 묶여 진정한 동료가 되어갔다.



그러다 내가 그분의 이름을 언급하며 “아시죠?”라고 묻자,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분 여자친구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나 모르겠네.”


사실 나는 이미 그분이 ㅇㅌㄹ에서 일했었고,


목사님에게서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역시나, 세상은 정말 좁았다.


지금 이 시간이 필요한 이유


세상은 넓지만,


특히 이 캘리포니아라는 곳에서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그냥 조용히, 은둔하며 사는 게 편할 수도 있다.


어디서 축구 얘기만 나와도 모르는 척 하는 이유도,


결국 누가 누군지 다 아는 이 좁은 사회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고요한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이민 생활이 이제는 조금씩 지쳐간다.


하지만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 산다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아마 외국 생활 몇 년만 해본 사람도 이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막내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고, 저녁을 해주는 일상도,

회사에서 고생한다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주는 선배님들의 존재도…


이 모든 게 내가 오늘 하루를 감사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한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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