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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바닥끝 지하 100층 어디쯤
by
blandina
Jul 26. 2025
오늘 아침, 문득 동네 공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밤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꿈들 속에서 뒤척이다가 겨우 눈을 떴다.
마치 진흙탕 웅덩이에 빠진 듯한 기분. 무겁고 어지러운 아침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유튜브에서 ‘아침 긍정 확언’을 틀어두고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씻겨 내려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명상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10분 남짓이 흐른 뒤,
정신을 다잡으려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앉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았을까? 지금 내 삶의 방향은 과연 옳은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무엇이 문제인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은 수렁처럼 날 끌어당겼다.
요즘의 내 삶은 그저 영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무미건조한 나날 같다.
계획도 없고, 희망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삶.
그저 껍데기뿐인 채로 살아가는 기분이다.
필드에 나가 골프도 치고, 남자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걸 먹고,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내지만…
그 속에 내 ‘영혼’이 없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집중하지 못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나도 성인 ADHD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잠깐 자리를 옮기려다가도 ‘내가 뭘 하려고 했지?’ 하는 질문만 머릿속을 맴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뭔가를 하려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이건 단순한 건망증일까?” 자문하게 된다.
나는 원래 자존감보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일엔 늘 성실했고, 노력과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1등이다’라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남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종종 그들에게 이런 의문을 품었다.
“저들은 지금 행복할까?”
하루에 두세 가지 일을 하면서도 그들의 삶이 전부 ‘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닐까?
내가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면,
나는 과연 내 인생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피부색이나 민족을 불문하고 다 같을 텐데,
왜 한국인은 그렇게도 빠르고 부지런하며 효율과 수익을 좇고,
멕시코 친구들은 하루에 세 군데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해도 만족스러워할까?
나는 그들의 ‘작은 행복’이 진심으로 부럽다.
한국 사람은 큰 성취에 행복을 느끼고, 그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찾는다.
삶의 끝은 누구나 같을진대, 왜 나는 다르게 살아가는 그들의 방식이 낯설고,
그들이 부러울까?
누가 누구에게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타인의 삶을 ‘틀렸다’ 단정할 자격도 나는 없다.
그걸 깨달은 건 마흔이 넘어서였다.
나는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지에 살았지만,
생각만은 한국의 조선시대 사람처럼 보수적이었다.
좁고 단정적인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손절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무너지고, 바닥이 아니라 지하를 파고 들어가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조금씩 나의 가족, 동료, 직원들, 수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고단하고, 때로는 행복하며, 사랑하고, 신을 믿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요즘 나는 침대 옆, 손 닿는 곳에 책을 놓지만…
책을 읽지 못한다.
아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술을 많이 마셔서일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노안 때문일까?
사실은,
글자가 아니라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넘기고만 있는 것이다.
삶도 그렇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영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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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셋 며느리 하나 싱글맘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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