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불가에 대하여
혐오
(상생불가에 대하여)
내 기침소리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유난히 크게 들리는 걸까. 누구나 살다 보면 아파서 콜록대며 끙끙 앓기도 할 텐데. 아픈 것도 서러운데,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난리였다. 그저 내게 찾아온 지독한 감기와 싸우느라 피곤해진 나의 몸과 마음은 사람들의 비난으로 더 예민해졌다. 물론 기침소리로 누군가 불편함을 겪는다면 그건 나로서도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나조차 그걸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프니까 참을 수 없이 터지는 비명 같은 것이었는데.
조용한 도서관에서 자꾸만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을 수 없어 황급히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하던 나를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도서관이 아닌 내 집에 있다. 그래서 나는 어디론가 빠져나갈 곳도 없고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다. 아늑하고 편안해야 할 보금자리에서조차 누군가의 시선과 기분을 민감하게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로 나답지 않게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행동하게 될 만큼 힘들다.
더구나 어떤 사람들은 마치 돋보기를 들고 개미를 들여다보듯 집요하게 나를 관찰하고 그 돋보기로 태양빛을 끌어모아 태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나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평소 누구나 어쩌다 할 수 있는 작은 실수도 그들은 내가 무슨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하여 나를 비방하고 고소하고 형량을 정하려고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을 그들은 그저 더러운 쓰레기요, 똥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상생카드 사용불가'라는 내가 가는 곳마다 붙어있던 메모, 그리고 곳곳에 의도적으로 쌓인 쓰레기더미.
동네마다 혐오로 가득했던 그런 날들의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는 아직도 어둠의 장막 속에 갇혀있다. 상생하지 않고 나의 이기심을 채우겠다는 사람들의 선택으로 지구가 병들었고,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났다. 우린 아직까지 살만 하다고 여기에 전쟁이 난 것은 아니지 않냐고 반박할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 뜨거운 냄비 속의 개구리가 떠오른다. 이런 생각조차도 그들은 괘씸죄까지 만들어서 분노하겠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소년에게 재미난 놀이터와 시원한 그늘과 맛있는 열매를 아낌없이 나누어주던 나무가 병들어 서서히 말라갔다. 그러자 필요할 때는 나의 친구라며 모든 것을 가져가던 소년은 더 이상 나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자 차갑게 돌아섰다. 그렇게 말라죽을 바엔 그 몸뚱이로 내게 좋은 일이나 하라며 소년은 그루터기만 남겨놓고 싹둑 잘라버렸다. 나무는 소년의 집을 따뜻하게 만드는 데 쓰였다. 소년의 그 겨울은 아마 조금 따뜻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에게 놀이터와 그늘과 열매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진정한 친구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소년을 기다렸고, 어쩌다 늙고 힘없이 찾아온 소년이 앉아서 쉴 곳이 되어준다. 난 왜 이리 슬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