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개똥벌레
(에피소드 3)
내가 세 살 무렵엔 군부대 바로 아래에 지어진 관사에서 지냈다. 관사에는 내 또래의 아기들이 제법 있어서, 나는 아침마다 "누구야, 노올자~"하면서 동네의 친구들을 불러냈다. 귀여운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라며 노래를 불렀다. 관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담터 길가에는 가을마다 코스모스가 피었는데, 하얀색, 연분홍색, 자주색의 코스모스들이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면, 나는 아이들과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뛰어다녔다. 우리는 살짝 두 볼이 상기된 상태로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아버지께서 군인이셔서 우리 가족은 이사를 제법 자주 다녔다. 내 기억엔, 겨우 짐을 풀고 적응할 즈음, 어머니는 신문과 달력을 가지고 그릇을 야무지게 싸서 라면박스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시곤 하셨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백령도로 발령받으셨고, 우리는 커다란 배를 탔다.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배 속에서 먹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이 생각난다. 빨리 먹고 싶은 어린 마음에, 자꾸만 컵뚜껑을 열어젖히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요리조리 찔러보아도 여전히 과자처럼 딱딱하던 컵라면. 그리고 맛있게 먹고 나면, 출렁거리는 갑판에서 유난히 울렁거리던 나의 뱃속.
그렇게 북한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백령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섬 안에서도 몇 차례 이사를 하다가, 운 좋게 군부대 근처의 관사에서 지낼 수 있었다. 다섯, 여섯 살 정도였던 나는 따로 어린이집에 다니지는 못했다. 당시엔 다들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벽에 달린 하얀 달력을 찢어서, 알록달록한 지구색연필 12자루와 함께 마룻바닥에 놓아두셨다. 나는 거실을 뛰어다니다가 색연필을 하나 손에 쥐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딴짓을 하며 놀곤 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시계 보는 법도 나름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는데, 아무리 설명해 줘도 내가 도통 잘 알아듣지 못해서 난감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병설유치원에 입학했다. 앨범을 넘기다 보면, 그때의 따뜻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풍날, 눈부신 햇살 속에서 선생님, 부모님, 친구들과 풍선게임을 하던 내 모습. 구김살 없이 해맑은 내 얼굴에 잔뜩 묻혀있던 밀가루, 달콤한 알사탕으로 볼록해진 나의 볼, 그리고 그저 배꼽 잡고 웃기 바빴던 그날의 모두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관사 근처 부대, 사단장의 딸과 나는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때는 우리 아버지가 하사관이라고 무시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좋은 친구였고, 사진 속의 그 아이와 나는 활짝 웃고 있었다. 앞니가 빠졌어도 개의치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