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변소
(에피소드 5)
우리 가족은 섬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큰 배를 타고 컵라면을 먹고 뱃멀미에 시달리다 잠을 청하니 어느새 항구에 도착했다. 갑판 위에서 웅크린 채 차가운 새벽공기를 맞으며 눈을 떴다. 부모님을 따라 부두에 내렸을 때,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새벽 바닷가의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시작될 보금자리로 향했다.
통진성당 앞에 내려서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따라 걷다 보니 우측에 어느 허름한 주택이 보였다. 그 주택 안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니, 회색이라고 하기엔 푸르고 빛바랜 낮은 시멘트 집들이 보였다. 우리 집은 주택과 바로 맞붙어 있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단칸방이었다. 삐그덕거리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 시멘트로 된 어둡고 쾌쾌한 작은 공간이 보였고 그 안쪽에 방이 있었는데, 따로 주방이나 화장실은 없었다. 우리가 서있는 시멘트로 된 입구 쪽 공간이 바로 주방이요, 욕실이었다.
겨우 조리를 위한 LPG 가스와 수도가 설치되어 있을 뿐,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았고 귀뚜라미들이 뛰어다녔다. 그리고 화장실은 집 밖으로 나가 다른 시멘트집들을 빙 돌아가면 오른쪽 맨 구석에 작은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변소에 갈 때마다 마음이 급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오줌과 똥으로 가득 찬 깊은 구덩이에 빠질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볼 일을 보던 나, 역한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아서 내내 숨을 참았던 나, 밑에서 휴지귀신이 나올까 봐 서두르던 나, 이미 누군가 볼 일을 보고 있으면 밖에서 한참을 서성대며 기다리다가 변비에 걸리던 나. 추운 겨울에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더욱 가기 싫었던 변소. 캄캄한 밤에는 도저히 혼자 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요강에 싸거나 부모님을 깨워만 했었다. 볼 일을 보던 중에도 계속해서 문 밖에 부모님이 계시는지 확인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변소가 어린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이고 힘들었는지, 꿈속에 자주 변소가 나타났다. 너무 볼 일이 급한데, 그 변소들은 하나같이 더럽고 냄새나서 그나마 깨끗한 변소를 찾아가 기웃대다가 어쩔 수 없이 들어가 겨우 위태롭게 볼 일을 보면, 어느새 아랫도리가 축축해져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곤 했다. 그건 내게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께 꾸지람을 들을까 봐 혼자 몰래 일어나 바지를 갈아입었지만, 이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 내겐 트라우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