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6
지붕
(에피소드 6)
석면 슬레이트 지붕 위로 세차게 비가 내린다. 견고한 아파트 안에서는 느끼지 못할 온갖 상념에 젖어든다. 지붕을 부숴버릴 것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이 지구에서 고작 얇디얇은 지붕을 우산 삼아 간신히 버티고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 이 보호막이 찢어지면 어찌 되는 걸까, 마음 졸이며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늘은 우리 집 지붕을 건반 삼아 신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나는 그 건반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불안에 떤다. 그래도 나는 좋다. 아무것도 없는 불 꺼진 텅 빈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었으니까.
빠르고 거친 손길은 어느새 느리고 부드러워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뗀다. 이때다 싶어 삐걱이는 방문을 열고 어두운 주방을 지나 강철로 된 현관문을 나선다. 잔뜩 물 먹은 하늘엔 무지갯빛 옅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텅 빈 동네를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괜히 발 밑에 고인 흙탕물을 걷어찬다. 어느새 옷은 축축해졌지만,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얀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힌 아카시아 나뭇잎을 톡 건드린다.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초록잎을 집요하게 하나하나 뜯어본다. 결국 앙상하게 남은 가느다란 줄기를 땅에 팽개친다.
그러다 다시 비가 와르르 쏟아진다. 그러나 나는 결코 놀라서 뛰어가지 않는다. 이미 내 옷은 젖어서 피부에 찰싹 들러붙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줄기가 내 볼을 사정없이 때린다. 싸대기를 얻어맞은 나는 조금 억울하지만,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누가 보든 말든 두 팔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본다. 빗물로 축 쳐진 옷이 버거워도, 그 순간 나는 자유롭다. 마치 아가미가 붙은 물고기 마냥 팔딱팔딱 숨을 쉬었다. 한참 빗속에 서있던 나는 입술이 시퍼렇다. 모락모락 김이 나고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그제야 나는 다시 동굴 같은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