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놀이

에피소드 12

by 진화정


인생놀이

(에피소드 12)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 내가 살던 관사의 아파트는 흙길과 콘크리트 도로가 있었다. 가운데 공터와 놀이터는 흙으로 되어있고, 각 아파트의 뒤편에는 콘크리트로 되어있었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나뭇가지나 병뚜껑 따위를 주워서 땅을 파거나 흙집을 지으며 놀았다. 흙에 금을 그어서 사방치기, 콘테찌빵, 오징어 놀이 등을 했다. 작은 흙구덩이를 파서 자치기도 하고, 구슬치기도 했다.


아침밥을 먹고 밖에 나오면, 어김없이 놀이터는 아이들이 있었다. 혼자 노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노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하늘에 불그스름한 도깨비 구름이 나타나면, 우리는 이제 곧 집으로 들어갈 시간이구나 했다. 아이들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밥때를 놓치기도 했는데, 엄마들이 창문을 열고 '누구야, 밥 먹게 들어와.'라고 크게 외치면, 그제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도 열심히 놀았다. 아스팔트 도로에는 일정 구간마다 가느다란 금이 그어져 있었는데, 그 구간을 경계 삼아서 비석까기를 했다. 몸의 구석구석을 이용해서 자기가 가진 비석으로 상대의 비석을 쓰러뜨리는 놀이었다. 손으로, 이마로, 발등으로, 다양한 위치와 각도로 상대의 비석을 향해 나의 비석을 던졌다. 촛불들기, 호떡굽기와 같은 재미난 동작들이 어우러져 더욱 재미있었다.


그리고 고무줄놀이도 재밌었다. 흙에서 하면 먼지가 많이 나지만, 아스팔트 위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초롱초롱 거미줄에 옥구슬....'라는 동요를 부르며 고무줄을 넘다가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라는 군가에 맞추어 고무줄을 넘기도 했다. 난 키가 또래 아이들보다 작았지만, 작은 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다리를 쫙 찢어 올려서 고무줄을 넘고 넘었다.


그리고 군에서 체육담당이었던 아빠가 가져다 주신 축구공으로 우리는 신나게 뻥뻥 차고 놀았다. 아스팔트 한쪽 구석에는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기에, 그 자동차들을 요령껏 피해서 공을 차고 놀았다. 어쩌다 다른 아이가 찬 공이 주차된 자동차에 세차게 부딪히자, 삑삑삑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모두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난다. 나는 비석까기, 고무줄놀이, 축구 모두 잘했다. 키는 작았지만, 민첩했고 유연했고 힘 조절이 꽤 괜찮았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둥글고 밝은 달을 보며 훌라후프를 돌렸다. 개기월식이 있는 날에도 나는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 달은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사라졌다가 다시 서서히 얼굴을 내밀었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밤이 더욱 어둡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우리에겐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재밌는 놀이었고 배움의 대상이었으며 소중한 추억이었다.

수, 토 연재
이전 11화개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