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에피소드 13

by 진화정


그날 밤

(에피소드 13)


아직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여름날, 작은 조립식 건물로 들어갔다. 마송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좁은 아스팔트길 왼쪽에 통진순복음교회가 생겼는데, 거기서 여름성경학교를 하기 때문이다. 멋진 오빠가 기타를 치고, 예쁜 언니가 피아노를 연주하면, 성경학교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찬송을 불렀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조금씩 따라 불렀고, 여전도사님의 재밌는 성경말씀도 들었다. 그 후, 다른 아이들과 함께 포도나무에 온유, 절제, 희락, 화평 등의 성령의 열매들을 알알이 붙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손가락 인형극, 그림자놀이 등을 보면서 까르르 웃었다. 퀴즈를 맞히고 선물도 받고 맛있는 빵과 우유도 먹었다.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것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부모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특히 아버지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교회에 간다고 무척 싫어하셨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마다 왠지 늦잠 자고 싶고 티브이에서 나오는 만화를 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교회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직 코흘리개 국민학생이었다. 그래도 나는 혼자서 열심히 다녔다. 기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둥둥 뜨던 날도, 기분이 비에 쫄딱 맞은 생쥐처럼 무겁게 가라앉던 날도 나는 자연스럽게 교회로 향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곳은 나에게 휴식처이자 피난처로 느껴졌을까. 어떤 갈급함이 나를 그곳으로 자꾸 끌어당겼을까.


나는 그 당시 열심히 놀기도 했지만, 열심히 공부도 했다. 그래서 국민학생이었지만, 해양탐사 및 연구논문도 썼다. 요즘말로 신재생에너지에 해당하는 수력, 풍력, 조력, 태양열 등의 에너지발전에 대해서 조사하고, 글도 쓰고, 폐품으로 해저도시도 만들고, 친환경 배도 만들었다. 성적도 그리 나쁘진 않았는데, 어느 날은 생각보다 점수가 덜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날 성극연습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화가 많이 나 계셨다. 시원치 않은 점수를 맞았으면 집에서 자숙하고 공부를 해야지, 교회에 갔다가 늦게 집에 왔다고 혼이 났다. 회초리로 두 종아리가 파래질 때까지 맞고 엉엉 울었다. 오지 않는 잠을 자려고 이불을 쓰고 누워있었는데, 아버지가 미안하셨는지 연고를 가져와서 종아리에 조심조심 발라주고 가셨다.


문제는 어린이합창대회가 다음 날이라는 것이었다. 하얀 반팔 남방셔츠에 바둑체크무늬 반바지가 합창유니폼이었는데, 나의 두 종아리엔 회초리 자국이 시퍼랬다. 메조소프라노 파트 담당이었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합창단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합창유니폼을 학교에 챙겨갔다. 선생님과 단원들이랑 버스를 타고 합창대회장소에 도착했고, 유니폼을 입고 대회 리허설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계속 나에게 회초리 자국에 대해서 물었다. 너무 창피하고 속상했지만, 무사히 합창대회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나는 교회에 가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내 남동생 손을 잡고 같이 재미나게 다녔고, 언제부터는 어머니도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추운 겨울,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나는 부모님께 그동안 준비한 성극을 보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과연 아버지께서 오실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하늘색 옷에 파란 천을 두른 예수님 역할을 맡았고, 동생은 갈색 옷을 입은 로마병정 역할을 맡았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이 자라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신 사건을 성극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어둡던 교회의 불이 켜지고 커튼이 활짝 열렸다. 대사를 잊을까 봐 조마조마하던 나의 심장은 계속 두근두근 뛰었다. 그리고 문득 관중석을 바라봤을 때, 긴 의자 한편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시던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와주셨구나 하면서 속으로 기뻐할 틈도 없이 연극은 계속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커튼은 닫히고 불은 꺼졌다. 무대인사를 하고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부모님이 기다렸다가 안아주시면서 잘했다고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가족들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릴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이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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