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심부름

에피소드 18

by 진화정


밤심부름

(에피소드 18)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때, 아파트 관사는 연탄보일러로 온수를 공급하고 난방을 했다. 우리 집이 일층이었고, 우리 집 바로 아래가 보일러실이 있었는데, 늘 기계와 모터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윙윙, 드르륵..... 작은 뒷베란다엔 연탄보일러가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까만 연탄을 사서 구석 벽 쪽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하나둘씩 꺼내서 쓰곤 했다. 가끔 그 연탄불에 마른오징어도 구워 먹었다.


새까만 연탄들이 보일러 안에서 활활 타올랐다. 그러다 산소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뭐가 잘못됐는지,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기도 했는데, 길게 집 밖으로 이어진 굴뚝에서 연기와 함께 그을음도 나왔다. 우리는 몹시 추웠지만, 보일러를 끄고 집에 있는 창문이라는 창문은 모두 열고 연기가 다 나갈 때까지 환기를 시켜야 했다. 담요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었다. 보일러 안에는 다 타고 남은 하얀 연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아버지 친구분들이 놀러 오셨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압력밥솥 뚜껑에 딸린 까만 추가 칙칙 거리면서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디선가 네모난 소반을 꺼내오시더니 행주로 먼지를 닦아내셨다. 그리고 내 손에 몇 천 원을 쥐어 주시면서 슈퍼에 가서 두부랑, 콩나물이랑, 소주 세 병을 사 오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그런 술심부름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겉옷을 대충 걸쳐 입고 문 밖을 나섰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참이슬 세 병...... 나는 슈퍼를 향해 서둘러 걸으면서, 혹시 잊을까 봐 입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비록 작은 슈퍼지만, 정말 있을 건 다 있었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슈퍼 아주머니가 건네 주신 하얀 비닐봉지를 손에 들었다. 남은 거스름돈으로 치토스 과자 한 봉지만 살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돌아서서 집으로 향한다. 모두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두운 밤,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 아래, 나의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손에 든 비닐봉지는 이리저리 흔들흔들한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자 마치 어두운 동굴 같은 지하 보일러실에서 윙윙 드르륵 거리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그 어둠 속에서 뭐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순간 나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발걸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서둘러 계단을 오르고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께 비닐봉지와 거스름돈을 건넸다. 하얀 두부와 콩나물이 김치찌개에 추가되고, 소반 위에는 소주 한 병과 소주잔들이 놓인다. 나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히 내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왠지 술심부름은 싫었다. 특히 밤심부름은.

수, 토 연재
이전 17화멈추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