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1
고맙고 미안해
(에피소드 21)
나는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김포에서 보냈다. 계속 이리저리 이사를 했지만, 백령도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주로 김포 관내에서 옮겨다닌 것이다. 김포는 서해안에 위치한 평야지역이다. 김포쌀은 금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찰지고 기름지기 때문에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다고 했었다. 버스를 타고 드넓은 김포평야를 가로지를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 덜컹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작은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밀려와 내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흩어버리고 나는 그래도 좋다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계속 보이는 건 끝도 없어 보이는 푸른 논 뿐이었는데도.
우리 가족은 심심하면 가끔 갯벌에 가서 맛조개도 캐고 뻘게도 잡고 망둥어랑 놀았다. 서해안은 특히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갯벌이 넓게 발달되어 있다. 달의 움직임에 따라서 바닷물이 밀려왔다 빠져나갔다 하기에, 사람들은 바다를 보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나는 바닷물이 차오르면 그런대로,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또 그런대로 재밌었다. 짠내가 배인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휘날려도, 마냥 신이 났다. 부드러운 갯벌 속으로 움직일 때마다 두 발이 푹푹 들어가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아예 그 자리에서 드러눕기도 했었다.
갯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어져 있는데, 대부분 맛조개의 숨구멍이었다. 요즘 티브이에서 보면, 사람들이 소금을 구멍 입구에 솔솔 뿌려서 맛조개가 가까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캐기도 하던데, 그때의 우리는 그냥 삽으로 파서 맛조개를 잡았다.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를 파보면, 여지없이 맛조개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사이사이 뻘게들이 종종걸음으로 달아나곤 했고, 여기저기서 두 눈이 튀어나온 망둥어들이 펄떡펄떡 뛰어다녔다. 그야말로 갯벌은 아이들의 무한 놀이터였다. 그때는 갯벌에 들어가는 것도 무료였고, 아무리 많이 캐도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너무나 깨끗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가 해양선도학교로 지정되어서 우리는 관련 논문도 작성하고, 폐품을 활용해 만들기도 하고, 폐교에서 해양캠프도 참여했다. 나는 그 당시 조력에너지, 풍력에너지 등의 친환경 대체에너지에 관해 조사하고 논문을 썼었고, 폐품들로 해저도시도 만들었다. 해양캠프에서 선장을 맡아서 함께 야영하는 친구들과 팀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우리는 폐품으로 배터리나 모터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배를 제작했는데, 페트병에 물을 채우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물의 반작용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의 배를 설계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때는 우리가 편의점에서 물을 사 먹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도 그냥 핥아먹었으니까. 그때는 이렇게 자주 미세먼지나 황사, 자외선을 걱정하고 마스크를 쓰고 다닐 줄은 몰랐다. 그저 맨얼굴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마음껏 달렸다.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자연의 소중함을 그때의 사람들은 잘 몰랐다. 공장의 굴뚝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하수구에서는 거품이 가득한 폐수가 흘러나오고, 농가에서는 소의 오물이 그대로 방류되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심각성을 느꼈고, 환경오염에 관한 글도 썼었다. 우리의 지구가 아프다며.
환경오염과 온실가스로 지구는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는 지구의 온도가 1도씩만 높아져도 비상이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산림이 없어지고 사막화가 되어가고 동물들도 살아갈 터전을 잃어 간다. 사람들도 환경호르몬과 이상기후로 여기저기 아프고, 이제는 인류의 생존 자체도 위험하다는 경고조차 익숙해졌다. 다시는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겠지만, 그나마 주어진 오늘도 미래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때가 되겠구나 생각이 든다. 슬프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끼고 사랑해야겠구나. 지구야, 고맙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