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쇠

자살과 타살의 어딘가

by 진화정


방아쇠

(자살과 타살의 어딘가)


육중한 고깃덩이

저울에 달면

얼마나 될까

이만 원 아니 삼만 원

주머니 사정이

바쁘게 돌아가는데


더 얹고 싶어도

한가닥 이성의 끈이

내 혀를 길들여

이만하면 됐지

괜히 처치곤란

주판알이 튀어 오른다


드넓은 초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눈부신 햇살과

칠은 비바람과

이얀 눈송이를 맞으며

오색 꿈꾸던 시절


어느덧 그 시절은

누군가 몰래 쳐놓은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덫에 걸리고

단지 움직일 수 없어

파르르 떨리는 날개


몸부림 칠 수록

더욱 죄어오는 목줄

거칠게 뛰어가는 심장

타들어가는 목구멍

그리고 아련히 떠오르는

그 시절의 추억들


누가 여기서 꺼내주오

차갑고 투명한 유리관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러나 무심코

지나치는 말소리

튕겨져 나가는 비명


그저 먹으려고

번득이는 눈

벌렁거리는 코

입가에 고이는 침

내가 누구이던

넌 상관없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나를 보낸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

이파리 한 장씩 떼다가

땀방울로 미끄러진

빌어먹을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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