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이 딱 하나, 사과 한 개만 있고 그 사과는 A가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B는 사과를 먹으면 행복을 느끼는데 전 세계에서 행복을 주는 물건은 이 사과 하나뿐이며 그것은 A의 손에 들려 있다. B는 그 대신 조개껍질 다섯 개를 가지고 있다. 만약 A가 B에게 사과를 주는 대가로 조개껍질 다섯 개를 받는 데 동의한다면 사과의 가격은 조개껍질 다섯 개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조개껍질 다섯 개가 더 떨어져 B는 조개껍질 열 개를 갖게 되었다고 해 보자. A는 여전히 자신의 사과가 B에게 예전과 똑같은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동시에 더 많은 조개껍질을 갖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상황에서 B가 예전처럼 조개껍질 다섯 개로 사과를 바꾸자고 하면 A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A는 조개껍질 열 개 전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사과를 먹는 것만이 행복을 주는 유일한 방법인 B는 결국 조개껍질 열 개를 모두 주고 사과를 받을 것이다. 이 순간 사과의 가격은 조개껍질 열 개가 된다.
하지만 가격이 조개껍질 열 개로 올랐다고 해서 사과가 이전보다 더 맛있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25년 서울 아파트값 누적 상승률이 8.71%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아파트로 꼽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48평의 가격은 한국부동산원 시세 기준으로 올해 6월 68억 원에서 불과 6개월 만에 4억 원이 올라 72억 원이 되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소유자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조개껍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 법하다.
그런데 정말 이들은 6개월 만에 더 큰 부자가 된 것일까?
위 표를 한 번 보자. 2025년 6월 30일 원달러 환율은 1,348원이었고, 12월에는 1,484원까지 상승했다. 12월의 아파트 가격인 72억 원을 6월 말 환율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그 가치는 약 65억 4천만 원에 불과하다. 즉, 원화 기준으로는 6개월 만에 4억 원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달러 기준으로 보면 자산 가치는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미국 달러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압구정 현대아파트 48평의 소유자는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약 2억 6천만 원가량의 가치 감소를 경험한 것이다. 원화 기준 가격은 올랐지만 자산의 국제적 구매력은 오히려 낮아졌다. 숫자는 상승을 말하지만 가치가 함께 상승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왜 숫자는 이렇게 오른 것일까.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은행 ECOS가 제공하는 우리나라의 “조개껍질 수,” 즉 M2 통화량을 살펴보자.
위 그래프는 2025년 5월부터 10월까지의 M2 추이를 보여준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M2는 5월 3,956조 원에서 10월 4,059조 원으로 약 100조 원 이상 증가했다. 이는 불과 5개월 만에 늘어난 증가분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더 중요한 점은 이 기간 동안 단 한 달도 감소하지 않고, 매월 꾸준히 양의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조개껍질의 개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개껍질로 표시되는 모든 가격은, 특별한 가치 변화가 없더라도 숫자가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부동산 가격 역시 이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결국 사과가 더 맛있어진 것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을 표시하는 숫자가 커지면서 상승처럼 보이는 착시가 나타난 셈이다.
이런 흐름은 최근의 코스피 상승과도 무관하지 않다.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경기 회복의 신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원화의 가치가 약해지고 통화량이 늘어난 환경이라면 주식 시장의 숫자 역시 같은 착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기업의 실질 경쟁력이 개선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많은 조개껍질이 주식 시장으로 흘러들어 갔기 때문인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쯤 되면 이렇게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한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인데, 달러 기준으로 국내 자산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나? 우리는 원화로 물건을 사지 않느냐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자. 해외에 사는 C라는 사람은 소라껍질 다섯 개로 D가 가진 오렌지를 바꿔 먹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날 조개껍질 다섯 개를 가지고 있던 B가 해외에서 생산된 오렌지를 먹고 싶어졌다. B는 먼저 자신이 가진 조개껍질을 C가 쓰는 소라껍질로 바꾼 뒤, 그 소라껍질로 오렌지를 사야 한다. 그런데 조개껍질이 갑자기 늘어나 B가 조개껍질 열 개를 갖게 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B가 여전히 오렌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 C는 예전처럼 조개껍질 다섯 개를 받고 소라껍질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개껍질 열 개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오렌지의 가격은 그대로인데 조개껍질 기준 가격만 다섯 개에서 열 개로 올라가게 된다. 조개껍질 대 소라껍질 환율이 올라 갔고, 조개껍질이 하늘에서 더 떨어졌을 뿐인데, 해외에서 사야 하는 오렌지는 더 비싸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나라다. 석유는 한 방울도 나지 않고, 에너지, 원자재, 식량, 부품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의 힘이 약해지면, 우리는 달러를 쓰지 않더라도 달러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원유와 가스, 곡물과 원자재의 가격은 달러로 정해지고, 환율이 오를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원화 가격에 반영된다. 기업은 늘어난 비용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고, 가계는 더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게 된다. 환율 변화는 금융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생활 전반으로 스며든다.
이 과정에서 자산 가격의 상승은 쉽게 부로 오해된다. 특히 부동산아니 주식처럼 눈에 보이는 숫자가 빠르게 오를 경우,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부유해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원화 가치가 동시에 약해지고 있다면, 그 상승은 실질적인 가치 증가라기보다 통화 환경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에 샀고 얼마에 올랐는가가 아니라 그 자산이 어떤 구매력을 유지하고 있는가다. 환율을 고려하지 않은 자산 가격 상승은 국내에서만 통하는 숫자일 뿐, 해외와 연결된 경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원화 기준 상승을 곧바로 부의 증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개껍질이 늘어난 세상에서 사과의 숫자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과가 더 맛있어 졌다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원화 기준 부동산 가격 상승과 주식시장 역시 자산의 본질적 가치 변화라기보다 통화 환경 변화가 만들어낸 착시일 수 있다. 지금 정부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도 여기에 있다. 조개껍질의 개수를 늘려 착시 효과를 기대하는 정책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더 큰 행복을 주는 사과의 양을 늘리는 방향이어야 한다. 숫자를 키우는 방식으로는 부를 만들 수 없다. 생산성, 경쟁력, 그리고 실질적인 가치가 늘어날 때 비로소 숫자도 의미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