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감정의 나비효과

by 졔리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울었다. 당황한 상대가 "왜 울어?"라는 물음을 건네지만 답을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즉슨 나도 내가 왜 그 순간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더 생각이 많아졌다. 나라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자리 잡은 열등감에 대해, 삶을 지속하는 목적성에 대해 끊임없는 사투를 벌인다. 언뜻 평범한 사유 같지만 결론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흐름으로 치닫는 게 문제였다. 이런 생각들을 내내 되풀이하고 있으면 감정적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다. 부정적인 결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분화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은 잘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적어, 생각의 굴레에 빠지는 일은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집에 도착한 시점엔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저 씻고 잠에 들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날 씻으려고 샤워기를 켠 시점부터 30분이 지난 후까지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차디찬 물에 손은 점차 붉어졌고 감각을 잃어갔다. 그때였다. 마음의 시한폭탄이 터졌다.


보통 시한폭탄이 터지는 시점엔 명확한 이유가 없었고 감정의 형태도 불명확했다. 하지만 이때는 서러움이 온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비판과 자기연민이 한데 모여 폭풍우를 만들어 냈다. 속이 뒤집힐 정도로 어지러웠다. 나를 울게 한 표면적 원인으로 온수를 말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마음이었고, 나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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