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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피 Mar 07. 2023

조금 더 나은 선택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기자가 아닌, 직접 인터뷰이가되어 지금의 순간을 기록으로 싶은 마음으로 이벤트에 지원했다는 하예은 님을 만났다. 육상선수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체대에 입학한 후, 글이 좋아 국어국문학과로 편입했다는 예은은 현재 <맨즈헬스>의 기자이자 콘텐츠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넉넉한 핏의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예은은 ‘이것도 나름 꾸미고 온 거예요.’라며 인사를 툭 건네고는 자리에 앉았다. 밝고 활발한 사람일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인터뷰 내내 조용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Q. 같은 에디터여서 그런지 첫 만남인데 익숙한 느낌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A. 안녕하세요, 성북구에 살고 있는 스물아홉 살 하예은입니다. 현재 <맨즈헬스> 매거진 기자이면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털털하고 밝은 인상과는 달리 시니컬하면서도 예민한 면도 있고, 아저씨 같은 모습이 있어요.


맨즈헬스 매거진


Q. 인스타그램을 염탐했는데, ‘러닝과 글’에 대한 내용이 많았어요.
A. 러닝은 제게 첫사랑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뛰어다니기 좋아했고,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초등학교 때육상부에 들어갔어요. 그때가 열 살이었는데 멋모르고 시작한 운동선수의 길이 대학생까지 이어졌죠.



Q. 육상 선수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요?
A. 맞아요.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시절에 제 길이 정해지긴 했죠. 그렇다고 그게 싫진 않았어요. 운동선수가 천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전국대회에서입상하면서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Q. 실력이 탁월한 선수였나 봐요, 전국대회 입상할 정도면?
A. 네, 엘리트 체육이라는 걸 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 비극이라고 한다면, 밖으로 발산하는 기질과 내적인 사유를 즐기는 정적인 기질이 공존한다는 점이었어요. 훈련이 없을 때는 만화책, 소설, 인문을 가리지 않고 읽었고 온갖 장르의 영화, 드라마, 음악을 탐닉했거든요. 10대 내내 운동한다는 핑계로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딴짓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고3이 되었을 때, ‘운동선수로 계속 살아야 할까?’에 대해 고민했어요. 실업팀을가자니 수입이 너무 적고, 체대에 가려니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일반 대학은 성적이 안 되는데 재수하자니 엄두가 안 나고(웃음). 결국 가까운 체대로 진학했어요.
 


Q. 흥미롭게도, 체대로 간 이후에 운동을 그만두고 국어국문학과로 편입했어요. ‘운동과 글’은 굉장히 다른 분야인데, 이 변화가 흥미로웠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요?
A.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큼이나 글을 좋아했고, 글 잘 쓰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괜히 멋있어 보이고 닮고 싶었거든요(웃음). 러닝은 열렬히 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옛사랑이라면, 글은 저의 평생의 사랑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늦기 전에 후회하지 말고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Q. 결국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셈이에요. 덕업일치의 삶은 어때요?
A. 쉽지 않아요(웃음). 좋아하는 일을 해도 따라오는고통이 있어요. 전 운동할 때보다 글 쓸 때가 더 힘들거든요. 오랜 시간 열심히 훈련했던 운동선수여서 글 쓸 때도 그때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적용돼요. 완벽하게 잘 써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채찍질하고, 만족할 때까지 몰아붙이거든요. 글 쓰다가 힘들 때는 ‘나를 위해서라도 그만해야 하지 않나?’ 싶을 때도 있어요. 적당히 타협하는 성격도 아니고 대충 쓰려고 해도 잘 안 돼요. 세상에 좋은 글을 내보내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제 기질대로 사는 거겠죠?


 
Q. 변화하는 것에 거침없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나요?
A. ‘오늘을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문구를 에어팟 케이스에 새겼어요. 전 지금껏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어요. 지나온 길에 대해서 후회한 적도 없고요. 물론 10년 넘게 걸어온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내려놓아야 했을 때는 힘들었죠. 하지만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한 것이고, 결국 지금의 제가 있잖아요. 무엇보다 운동만큼, 어쩌면 운동보다 좋아했던 글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고요. 앞으로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려 해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가면서요.
 
Q. 예은에게 ‘조금 더 나은 선택’은 뭘 의미하나요? 
A. 편하고 익숙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 보는 것이요. 체대를 자퇴하고 국어국문학과로 편입한 덕분에 원하는 공부를 했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그런 선택을 늘려가고 싶어요.

하예은 인스타그램

Q. 5년 뒤에도 매거진 기자를 하고 있을 것 같나요,아니면 새로운 모험을 떠났을까요?
A. 모르겠어요.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지, 또 다른 일을 찾아 떠날지. 전 마음 가는 게 생길까 봐 두려워요.  무엇인가를 깊이 좋아하면 앞뒤도 재지 않고 달려드는 스타일이거든요. 어쩌면 지금 하는 것들을 다 버리고 그 길로 뛰어들지도 몰라요. 제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가도 주저하게 돼요. 너무 깊이 빠져서 언젠가 앨범을 내려고 할까 봐요!
 
Q. 예은을 보면 뿌리 깊은 나무가 떠올라요. 자기답게 사는 분 같고요.
A. 저도 흔들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스스로 질문을 많이 던지면서 저에 대해 알아가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전 ‘자기답다’라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요즘 ‘자기다움’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전 그 단어 자체가 저를 한정하는 것 같아서 사용하지 않아요. 제 모습, 생각, 가치관 같은 것들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건데, ‘이게 나다운 모습이야!'라고 규정해 버리는 순간 얽매이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를 자유롭게 열어두고 싶어요!
 
Q.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에요. 2023년은 어떤 해가 되길 바라나요?
A. 스스로를 잘 돌보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하루하루 몰아치듯 살아왔어요. 쳇바퀴 같은삶에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지냈거든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어요. 산책하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요. 몸도 마음도 건강한 게 최고니까요!
 



예은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젊었을 때 사서 고생하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모험에 뛰어드는 모순적인 성격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예은. 본성 안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은, 점점 자신의 세계를 넓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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