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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수고했어

투표는 못했지만 수고는 했어.

by Hi jingyoo


창세기 신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여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내어 여자를 만드셨다 한다.

만들고 나서 보니 앗차 싶으셨던가?

여기서 교인들은 막 만들어내는 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찬양한다.


그러나 나는 질문한다.


전지한 분께서 왜 처음부터 남녀를 한 번에 안 만드시고?

혹시 안 전지하신가?


그렇다면 전능도 안 전능하신 건 아니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이유는 뭔가를 남기려는 거다. 물질과 정보와 자원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는 매일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남는 감성, 느낌, 글 한 줄, 단어 하나라도 가슴에 깊이 남길 바라나 요즘 그런 건 잘 없다.


'감동 총량의 법칙'


닭은 평생 낳을 알의 수량만큼 난포를 갖고 태어난다. 순서대로 난포가 알로 변해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게 계란이다. 이 양이 정해진 것처럼 내 감동난포도 총량이 정해져 있고 나는 그걸 거의 다 써버렸는지 요즘은 별로 감동을 먹지 않는다.




김학철 교수는 3프로 TV에 나와 예수에 대한 묘사 중 으뜸이라며


'산문적 인생의 복판을 가로지른 시의 원형'이라는 표현이 가장 좋다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무릎을 쳤다.

예수를 저렇게 향기로운 글로 표현하다니.


그러다 다른 인물들도 떠올랐다.


올타임 넘버원이라 할 이순신 장군. 백성을 어여삐 여겨 쓰라고 글까지 만든 대왕 세종.

불의에 항거하여 목숨까지 바친 유관순 열사. 안중근 장군(의사). 내 나라 내 백성이 백배 천배는 더 값지다던 영화 광해의 대역 왕, 돌아보지 말고 가란 말이다고 소리치며 그 대역 왕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 조선제일검 도부장도 모두 산문적 인생의 복판을 가로지른 시의 원형이라 하겠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향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말을 하면 즐겁다. 자신의 생존에만 매몰돼 악취만 내는 인간들에 힘들다가 저런 사람들을 만나 말을 나누고 술이라도 한 잔 나누면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인류 발전의 역사는 각 개인이 투표권 하나를 얻는 데 있다고 한다. 그 투표권 하나를 얻기 위해 목숨을 던져 불의에 맞서고 약자를 위해 동지와 인류를 위해 싸웠으며, 이 투표권이 우리 인류와 짐승들을 나누는 기준이라 했다. 옳다. 백 번 맞는 말씀이다.


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미국 마저도 여성은 1920년, 흑인은 1965년이 되어서야 투표권을 갖게 되었는데 저 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성과 흑인은 인간이 되었다 하겠다.


지렁이는 땅 속에 구멍길을 내고 돌아다니며 먹고 사는데, 그 과정에서 흙을 먹고 뱉어 흙에 공기와 양분을 주어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 준다. 게다가 얘들은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다. 기름진 땅을 만들어 식물에게 이로움을 주고 때로는 먹이가 되어 동물에게 도움이 된다. 이렇게 이로움만 주는 생명체가 또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지렁이가 아무리 이롭고 예뻐도 그들에게 투표권은 없다. 지렁이들은 그렇게 살다 갈 뿐이다.




계란 생산을 위해 키우는 산란계들은 1~2년 열심히 알을 낳도록 키워진다. 그 후에는 노계라고 싼값에 처분되고 있다.

그런데 그걸 아는가? 닭은 30년을 산다는 것을. 굳이 잡지 않는다면 그들은 30년이나 살 것인데 알을 좀 듬성듬성 낳게 되면 사료비보다 못하다는 낙인을 받고 처분되고 만다.




아담 다음으로 세상에 온 이브는 그만큼 늦는 바람에 그만큼 늦게 투표권을 얻은 걸까?

참정권을 획득한다면 지렁이도 닭도 천수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오늘날의 투표제도가 있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받지 않았을 것도 같은데,


산문적 인생의 복판을 가로지른 시의 원형으로 살다 가신 수많은 꽃님들 별님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제야 투표권 한 장 얻은 것인데 이걸 아무나 찍고, 모르고 찍고, 귀찮다고 그놈이 그놈이라며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투표하시라.

지렁이도 예쁜꼬마선충도 가지지 못한 오직 인간만이 가졌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나와 가족과 인류를 위해 숭고하게 참정권을 행사하시라.




대통령이란 자가 벌인 내란으로 지난 반년동안 수많은 불면의 날을 겪고 치러지는 선거가 다음 주다. 어제와 오늘은 사전투표를 하는 날이고.


12월 3일 김건희 남편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12월 4일 국회에서 계엄을 해제했을 때

12월 7일 탄핵이 불발되었을 때

12월 14일 탄핵안 가결되었을 때

4월 4일 윤석열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었을 때

분노했고 고통스러웠고 때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벌어진 극우의 만행과 테러, 폭동, 이재명 후보 암살 제보, 부정선거 음모론과 젓가락 질문 등에 지쳐 우리 일상은 무너졌고, 국가경제는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았으며, 지역경제도 자영업자들도 모두 무너져 문 닫는 점포가 즐비한 지금 우리가 내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딱 하나 투표다.


투표합시다.


이제 그만 분노와 고통에서 벗어나 여행도 가고 맘 편히 대포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럽시다.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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