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점프 우기기
나는 잘 모르지만,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순간이동을 한다고 한다.
원자핵 주위를 궤도운동 하던 전자는 다른 궤도로 경로를 바꿀 때 원래 있던 궤도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궤도에 나타나 회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상 8번 레인에서 달리던 선수가 갑자기 사라짐과 동시에 4번 레인에 나타나 달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서작성을 위해 한글 프로그램을 쓸 때 여러 칸의 표를 만들어 맨 첫 번째 칸에 커서가 깜빡이게 두고 있다가 마우스로 맨 아래 칸을 클릭하면 제일 앞에 있던 커서는 중간 칸들을 거치지 않고 맨 아래 칸에 나타나 깜빡인다. 물론 우리는 모니터가 앞 칸의 불을 끔과 동시에 아래 칸의 불을 켠 것임을 안다.
컴퓨터는 0과 1, 연결과 차단 또는 꺼짐과 켜짐의 2진법으로 연산하고 정보를 저장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정보를 수많은 픽셀에 각각 0과 1 즉 꺼짐과 켜짐으로 저장하고 이 사진을 보려고 클릭하면 저장된 켜짐과 꺼짐 정보를 처리해 화면으로 보여준다.
나는 원자핵 주위를 순간이동 한다는 전자에 대해 초미시 세계에서 관측의 한계로 인해 순간이동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 생각한다. 무한히 큰 세계와 반대로 무한히 작은 세계는 있을 수 없다. 점이나 선은 공간을 가지지 않는다. 영상 속에서는 점과 선을 끝없이 확대해도 처음 보이던 크기와 두께로 계속 그려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종이에 찍힌 아무리 작게 찍힌 점이라도 조금만 확대하면 점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무한히 작음이 아닌 대단히 작은 원자를 관측할 때 관측 장비가 가지는 한계가 있다. 현미경의 픽셀 크기를 최소화했으나 전자의 크기가 최소 픽셀의 크기보다 작을 때 전자는 픽셀 한 칸의 공간에서 좌에서 우로 스르륵 움직였음에도 픽셀 내에서는 전자의 움직임을 표현하지 못하다가 전자가 다음 픽셀로 넘어갔을 때 비로소 다음 픽셀에서 전자를 감지한다.
마찬가지로 그 픽셀도 전자가 픽셀 좌측에 진입했을 때 1 이란 신호로 켜고 전자가 계속 우측으로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다가 전자가 다음 픽셀로 넘어간 후에야 0으로 신호를 끄고 다음 픽셀의 불을 켠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전자가 순간이동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관측 장비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보일 뿐이고 실제 현실에서 전자는 0과 1의 디지털 운동은 하지 않는다고 본다.
양자역학이라는 게 결국 수용의 학문이어서
광입자 하나를 쏘았을 때 누가 보고 있으면 입자 하나가 날아가고 누가 보지 않으면 파동운동을 한다는 걸 수용할 수 있어야 양자역학이 뭔지 이해한다고 한다.
관측할 때와 관측하지 않을 때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나는 이게 이해도 되지 않고 수용도 되지 않는다.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니......
발사된 입자가 관측자의 유무를 확인한 후 하나로 날아갈지 파동으로 운동할지를 정한다면 입자가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고,
볼 때와 안 볼 때 이 두 실험의 다른 점이 관측의 유무일 뿐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관측이 뭔가 작용을 하는 것일 테고 그 작용의 결과로 인해 광입자 한 알이 한 알로 날아갈지 파동으로 변신할지 정해지는 것이겠다.
이런 식으로 여기서도 관측의 문제가 나온다. 너무 작은 애들을 볼 때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거나 기술력의 한계로 더 이상 확대해서 볼 수 없어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의심하면서 나는 계속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회사 화장실 소변기 눈높이에 창이 있다. 어느 날 일을 보는데 저녁노을이 유리창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밖을 보니 금촌 시장 뒤 공제선에 걸린 십자가와 건물들 나무들 검게 붉게 노랗게 하얗게 불타는 하늘들......
내 친구 이모에게 창밖을 보라 했다. 까치발을 들어도 밖을 볼 수 없던 그 친구는 "됐거든" 하며 투덜투덜 사라졌다.
그에게 창 너머는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0이나 1 중 하나였다.
현실에서 디지털 운동은 실재하고 있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