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오르는 모습 잊었었던 사람
난 요즘 꿈을 잘 꾸는 편이다. 등이 서늘한 악몽을 꾸기도 하고, 행복에 겨워 계속 그곳에 살고 싶을 정도의 좋은 꿈도 꾸기도 한다. 그런데 오랜만에 대학교에 절친이었던 친구가 꿈에 등장하였다.
꿈의 내용은 이미 일어날 때부터 머릿속에서 날아갔고 다만 마지막으로 만난 지가 언제인지 따져보며 잠자리에 일어났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대학교 졸업하고 연락이 끊겼다가 어찌 저찌하여 연락처를 알아 어느 여름 혜화역에서 저녁을 먹은 게 우리 만남의 마지막이었다.
대학 동기 서너 명이 진짜 오랜만에 함께 뭉쳐서 대학 때 에피소드 그리고 회사의 상사 및 높은 분을 씹기도 하면서 맥주잔을 돌리며 즐거운 그 저녁을 보낸 게 마치 어제처럼 느껴졌다. ‘잘 지내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도 있겠지.’ 일어나자마자 보이지 않는 친구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던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의 연락이 끊긴 것은 내 자격지심이었다. 당시 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문자로 친구가 한번 보자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만큼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낮은 자존감도 존재했었다. 몇 날을 고민하다가 난 결국 연락을 포기했었고 나중에 진짜로 연락을 하고 싶을 때에는 이미 인연이 끊긴 후였다.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 잠언 19:4
“가난한 자는 그 형제에게도 미움을 받거늘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아니하겠느냐” 잠언 19:7
‘곳간에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내 ‘마음의 곳간’에도 넉넉해야 인심이 나는 모양이다. 그 마음의 곳간을 난 50세가 돼서도 간수를 잘 못했다. 50세가 되어 비로소 느낀 점은 그 ‘마음의 곳간’을 먼지가 날리지 않게 주기적으로 청소도 하고, 정성스레 닦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쌀가마니 쌓아 올리듯 정신적∙물질적 재물을 쟁겨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난 ‘곳간’에 대한 내 태도를 잘못 정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돌고돌아 겨우 제자리에 왔고, 앞으로 마음을 잘 다독여서 앞으로 나갈 일만 남은 것이다.
그 친구는 워낙 정 많고 다정다감한 만능인 사람이었다. 만나면 항상 웃음이 끊기지 않고 헤어지기 아쉬운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내 손으로 가위를 쥐고 그 소중한 연을 포기한 것에 아쉬움을 넘어 후회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줄어들고 약봉투에 약의 숫자는 늘어간다는데, 현재 친구의 수는 모르는 사이에 줄어들고, 먹는 약은 이런저런 이유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어영부영 나이를 먹다보니 가끔 거울에 비친 50대가 된 낯선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연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마지막에 만났던 종로3가 이름 모를 횡단보도에서 어쩌다 부딪히면 무슨 말을 먼저 나눌까? 서로 급한 약속이 아니라면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핸드폰 번호를 서로 교환한 후 나중에 약속을 잡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대학교 때 죽마고우처럼 지내던 친구야!
잘 지내지?
나이는 거스르지 못하겠지만 여전한 모습일 너.
친구야! 많이 보고 싶구나.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영상 편지’처럼 글로써 너에게 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