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헌책방 덕후로 안내하신 분
어제 퇴근한 후 누워서 쉬고 있던 중 인터넷에서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3년간 지병과 싸우다 폐렴으로 75세의 일기로 하늘로 가셨다 한다.
사실 난 이외수 선생님과 아무런 인연이 없다. 아주 열렬한 팬도 아니고 심지어 일면식도 없고 그저 한때 그분의 소설에 심취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소설가인데 같은 하늘 아래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 섭섭했다.
대학교 갓 입학한 후 내가 이리저리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도서관에서 기웃대다가 따끈따끈한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 바로 ‘벽오금학도’였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 2층 침대 위에서 밍기적 거리고 있을 때 가방에 한쪽 삐죽이 나온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한장 읽고 다음 장이 기대되어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고 그렇게 밤을 새서 그 책 한 권을 완독한 기억이 있다. 덕분에 다음 날 전공과목 수업에서 꾸벅꾸벅 졸기는 했지만, 책을 읽은 그 여운은 꽤 오래가서 이외수 선생님의 다른 책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대학교 때 내 취미는 헌책방에 가는 것이었다. 인천에 살 때는 굴다리에 있는 헌책방을 뒤적였고, 안양에 살 때는 물어물어 허름한 책방에 가서 책을 보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헌책방도 주말마다 가는 순례지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고백하건데 내가 책벌레라 책방에 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래된 고서적에 관심이 있어 헌책방을 찾아다닌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남에게 불쑥 자랑하고 싶어 ‘너 이런 취미 없지.’ 이런 건 더더욱 아니다.
내가 헌책방을 가는 이유를 꼽자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1. 멀리 입구가 보이면 퀘퀘한 냄새가 나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은근한 된장 맛이 난다.
(정확한 표현을 못 찼겠다) 가끔은 아주 오래된 커피 볶는 냄새가 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한 그런 향기, 당시 난 그런 게 그리웠던 것 같다.
2. 내가 헌책방에서 특이한 행동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앞 장 혹은 마지막 뒤 장을 훑어보 고 무슨 글귀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단순히 날짜와 누구에게 드림이라는 내용도 있고, 생일 축하나 응원과 격려의 문구도 있었으며, 고백이 슬쩍 묻어나오는 애틋한 문장들도 있었으며, 자신을 위해 소망하는 글도 있었다. 이름모를 그분들의 담백하고 솔직한 글이 가슴에 와 닿았다.
3. 발걸음이 불편한 좁디좁은 폭과 어울리지 않는 높디높은 책장을 거닐다가 유난히 나에게
손짓하는 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도 아닌데 왠지 눈길이 가는 그런 책이 있다.
손에 넣고 잠시 읽어보면 보물같은 그런 책이라 후다닥 계산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4. 헌책방에 온 손님들을 본다. 모두 얼굴에 ‘난 책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선입견이라 흉볼지 모르지만, 인상도 선하고 오랜 친구처럼 반갑다. 우연히 말이라도 건네면 살가운 말이 오가곤 했다. 가끔은 옆에 있는 손님이 무슨 책을 봤는지 훔쳐 보기도 했다. 혹시 나와 같은 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쓰고 보니 무슨 스토커 같기도 하고 ㅠㅠ)
이제 헌책방을 가던 취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라졌는데, 그래도 서너 달에 한 번씩 헌책방을 가는 것은 이어졌다. 특히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던 헌책방은 오래된 책뿐만 아니라 신간도 섞여 있고, 자원봉사 직원들의 열정과 어울려 관리도 잘 된 편이라 정말 좋아했는데 종로에 있던 헌책방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었다. 그때의 기분은 오랜 친구가 이제 이민을 가서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느낌 같았다.
고백건데 이외수 선생님의 책을 많이 섭렵하지도 못했고, 그분의 문학관이나 집필의 원동력 등을 알지 못한다. 그렇게 난 문학에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그분 덕분에 난 기숙사에서 ‘벽오금학도’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고 헌책방에 대한 관심을 가져 한동안 ‘헌책방 덕후’가 되기도 했다.
오늘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지금은 밖은 너무나 맑고 따스하다.
하늘로 올라가신 이외수 선생님,
마지막까지 의식이 있으셨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외수 선생님
그 ‘눈물’ 무슨 의미인지 짐작건대 행복한 눈물이었기를 바란다.
부디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