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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Aug 04. 2022

29화 냉장고 파먹기

- 코로나도 피하고 일석이조?

지난주부터 나는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지 않는다. 우리팀에서 한 분이 코로나에 걸려서 감염에 대한 위기감이 발동하였고, 동시에 3차 접종까지 했는데 지금 걸린다면 좀 억울하다는 생각에 더하여 사회적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기에  잠시 동안 식당을 멀리하기로 했다. 또한 내가 자주 가는 식당이 제법 규모도 컸고 테이블마다 있던 칸막이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까닭도 날 꺼림칙하게 만들었다.   

 

덧붙어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물가가 너무나 뛰어서 생활비를 좀 아끼고자, 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냉장고 파먹기’에 눈길이 갔기 때문이었다. 소비단식(Spending Fast) 일환으로 생활비를 줄이고자 우선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일용할 양식부터 소비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티끌 모아 태산’ 또는 ‘티끌 모아봤자 티끌’ 어느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저찌하여 사다 놓고 깜빡하고 사용하지 못해 버린 게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일단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에 있는 재고(?) 조사부터 들어가야 했다. 퇴근 후 확인해 보니 한 일주일은 돈을 안 써도 될 정도로 물자가 제법 풍부했다.    

  

문제는 반찬이었다. 밥은 하면 되는 것이지만 ‘요리에 똥손’인 나는 반찬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고, 그렇다고 반찬가게에 가는 것은 일시적 소비단식의 원칙과 어긋나는 것이어서 난 잠시 고민하였다. 그리고 어쩌다 시장에서 산 반찬은 한두 끼 식사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하루가 지나가면 왠지 처음의 맛이 나지 않아 대부분 버리게 된 기억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반찬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당분간 나의 점심 메뉴는 다음과 같다.    


1. 밥 : 잡곡으로 한 밥을 냉동실에 얼렸다가 아침에 가져가기.

       밥하기가 정 귀찮으면 코로나 대비해서 마련한 ‘햇반’ 가져가기    


2. 반찬 : ‘김치 + 꽁치’ 볶음 (이게 떨어지면 다른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    


3. 김 : 마트에 가서 1+1 하는 걸로 고름  (이건 어쩔 수 없는 소비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     


4. 삶은 계란 2개 : 처음에는 프라이를 할까 했는데 귀찮아서 삶아서 가져가기로 함. (오, 단백질 덩어리)   


5. 야채 : 오이. 양파. 또는 과일을 잘게 썰어서 가져감 (나이가 들수록 야채를 챙겨야 한다는 말에 백번공감)  

 

내가 좋아하는 물냉면도 1만 원하는 시대가 왔다. 시간도 지나고 재료비도 오르고 인건비도 상승하는 지금 예전의 가격을 고집하는 것은 분명 합리적이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소비자입장에서 서보면 한 푼이 아쉬운 나에겐 어떡해서든 아껴야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더구나 공무원 월급 너무 뻔하지 않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가 이끌어가고, 소비가 미덕인 사회임은 분명하다. 누군가 소비해야 물건을 만들고, 그 일부는 또 다른 부문에 투입하고 소비하고 이렇게 선순환되어야 사회가 국가경제가 돌아가는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국가정책상 합리성과 개인의 합리성이 충돌할 경우 어떻할 것인가.    


 결국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치밀하게 소비계획을 짜지 않으면 월급만 빼고 모두 오르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우리는 생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냉장고 파먹기’라는 것도 이 버거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작은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안정망이 촘촘하지 못한 시절 그때는 가족이 서로 울타리가 되어 국가의 역할을 대신 해주었지만, 대가족이 해체된 지금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부모는 무한책임으로 자식을 돌보지만, 자식들은 여러 사정으로 부모를 부양하기엔 어려운 세대로 변하였다. 결국 쌍방향으로 돌봄을 유지했던 가족시스템은 이제 경제적 희생이 부모쪽 일방향으로 흐르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가의 복지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 우선순위도 어려운 사람에게 오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국가의 손길이 미치기 전까지 스스로 버텨야 하는데, 우리네 어려운 사람들은 그 시간이 천만년처럼 느껴질 것이다.


말이 삼천포로 빠졌는데 핵심은 모두가 살기 어려운 시대를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족 한 마디.  '냉장고 파먹기'의 가장 큰 단점은 아래 사진으로 대신한다. 너무 귀찮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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