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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Aug 14. 2022

34화 고(故)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난 천상 문과 체질이라는 걸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학시간과 물리시간은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시간을 때웠다면, 국어시간이나 국사 시간은 암기양이 적지 않았음에도 즐겁게 보낸 기억이 많다.   

 

특히, 세계사 시간이나 국사시간에 맛보기로 들려주는 여러 역사적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성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배점 많은 국영수가 아니라서 ㅠㅠ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국사시간이라도 근현대사로 넘어갈 때쯤이면 몇몇 역사적 사실은 열불나게 만들었고 왜 그 당시 그것밖에 하지 못했냐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나중에 과거 여러 어려움을 겪고 독립에 헌신한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가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서 생활을 한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메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겠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있다.

  - 신석정 「꽃덤불」 중에서    


시인 신석정 님의 분류로 말하자면 고(故)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1869~1931)는 ‘영영 잃어버린 벗’에 해당될 수 있겠다. 고(故)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는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영국런던 데일리메일(Daily Mail) 종군기자로 대한제국을 방문했다가 1906년 다시 대한제국에 온 메킨지는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일제의 침략상과 독립운동, 항일 의병들의 활동상을 직접 취재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한제국의 비극(Tragery of Korea)’이라는 책에 생생히 담아냈다.    


이 글 맨 나중에 나온 사진은 1907년 정미의병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의병장의 말을 덧붙였다.     

“(의병장은 나에게)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났습니다.”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는 메킨지가 항일 의병을 만난 뒤 그들을 묘사한 말이었다.   

의병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이것이 유일한 것으로 아는 나에게 이 귀중한 사진을 전해 준 고 맥킨지 님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고 맥켄지 님은 1920년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Korea’s fighting for Freedom)을 저술하여 3.1운동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상세히 기록했다. 또한 1920면 영국 런던에서 ‘한국친우회’를 창립하여 일제의 식민정책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고통에 신음하는 한국민의 실상에 세계로 알렸다.  

  

당시 처음 대한제국에 온 맥킨지는 일본에 호의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듣보잡 정도의 나라였을텐데 그 입장이 변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난 궁금했다.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의 서문에서 그 질문의 답을 일부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나는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한 고대 민족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비극적인 공포 속에서 살다가 오랜 잠에서 어렴풋이 깨어난 한 몽고계 민족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문명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 이를테면 자유, 자유로운 신앙, 그들의 여성의 명예, 그리고 그들 자신의 영혼의 계발과 같은 것들을 누린 적이 있으며 지금도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는 지금 ‘자유’와 ‘정의’를 외치고 있다. 세계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자유를 잃고서야 뒤늦게 그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은 우리 민족. 그 역사적 교훈아래 4.19혁명이 일어났고,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어찌 나라의 입장에서만 바라볼 수 있겠는가. 개인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각자 소중한 가치를 위해서 끊임없이 헌신하고 투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남에게 과시하거나 나중에 자랑하려는 게 아닌 자신의 존재와 삶을 위해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는 이가 있다. 나는 이런 분을 닮고 싶다.

   

내일은 77주년 광복절. 노예의 삶이 아닌 자유인을 갈망하며 투쟁했던 의병처럼, 남은 나의 삶도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내 ‘자유의지’로 살다가 가고 싶다.


그 방법이 뭐냐고?

고(故)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님이 이미 힌트를 주지 않았는가.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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