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무늬영원 Aug 28. 2022

37화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간만의 문화 여행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7월 달에 어렵게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그날 이촌역 국립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접수처에는 긴 줄로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행히 온라인 접수 줄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접수하는 줄이라 빨리 티켓을 손에 쥐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중장년 층이라면 인터넷 예매에도 능숙해져야 제때에 이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11시 반이 되어 입장하게 되었다. 여러 섹션으로 구분된 전시회는 순서대로 관람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안내자 분의 말에 보다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문화재 수집자라면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님을 들 수 있겠다. 일제 강점기 당시 다른 나라로 넘어갈 뻔한 여러 문화재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대에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신 전형필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 사립박물관 ‘보화각’을 설립하고 후진양성에도 힘을 써 한국문화의 맥을 끊기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이런 일을 끈기 있게 했던 것은 재력 외에도 굳건한 의지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이는 고(故) 이건희(1942-2020) 회장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그분의 인생에도 명암이 있을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문화적인 면에 국한하여 말하고자 한다.)   

   

고 이건희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하기도 하고, 직접 이렇게 문화재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증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재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아울러 문화적 자부심을 고양하고 문화적 상상력의 싹을 틔울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고 본다.     

2021년 4월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 중 23,0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102점은 지역의 미술관 5곳으로 유족에 의해 기증되어, 그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으며 인물화를 설명하는 모습에서, 가족이 모여 이중섭의 ‘춤추는 가족’ 앞에서는 1950년대 천재 화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에서, 외국인인데 불상 앞에서 아이들에게 뭔가 설명하는 모습에서 문화는 이렇게 이어지고 이어지는 것이리라. 이런 우리네의 문화적 열정이 식지 않아서, 우리가 아직까지 중국어를 또는 일본어 아니면 영어를 표준어로 사용하지 않고 우리의 ‘한글’을 사용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이번 특별 전시회는 여러 분야의 문화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석상, 인물화, 채색화, 인조석 작품, 백자, 편지글, 토우장식 그릇받침, 수묵화, 청화백자, 분청사기, 삼국시대 칼, 불상, 범종, 수월관음도 등 마치 작은 박물관 같다고 여겼다.     


간만에 문화여행. 정말 즐거움. 세월의 부침에도 느낄 수 있는 문화재의 원형.    

 

어떤 매체를 통해서 보지 않고 실제로 직접 눈으로 마주치는 문화재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한번 내 눈으로 보고, 내 마음의 그 느낌을 확인하고, 그 다음에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는 그 시도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소풍같은 것이다. 그 작가의 의도를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그 여정은 호기심의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 가슴 저편에 작은 씨앗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 후에 책을 읽거나 어딜 방문하거나 무슨 강의를 듣거나 혹은 작은 메모를 차곡착곡 쌓아올리면 그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서 내 안의 예술과 문화의 작은 텃밭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그 텃밭은 나만의 인문학 보고(寶庫)로 이어지리라.     


여러 가족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부럽다. 빛이 난다.     

아래 작품은 가족을 주제로 한 것인데 잠시 감상하시길. 마지막 작품은 이중섭의 ‘춤추는 가족’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며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슬픔에서 기쁨을 뽑아내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졌다. (다만, 사진 솜씨가 어설퍼서 여러분께 죄송할 따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34화 고(故)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