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합격이 끝이 아니다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합격자 파일에 내 수험번호가 있는 걸 확인하고 난 비로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년 기약으로 시험을 준비했고 그때까지 결과물이 없으면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내 인생에 돌발사건이 발생하였고 난 딱 한 번 만 더 응시하기로 했었다. 아무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합격의 기쁨은 딱 하루만 짧고 강력하게 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고 다음 날 난 다시 차분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 이유가 딱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남은 공직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몸이 나에게 보낸 경고 아닌 경고가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구글이나 공무원카페에서 내가 들어갈 부처에 대해 또는 담당해야 할 업무에 대해 찾아보았다. 면접준비를 하면서 한 내용과 엇비슷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난 원했고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보물 같은 정보가 단순한 키워드 검색으로 누구나 쉽게 엿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zoom 교육이 끝나고 ojt 교육도 끝나고 부서에서는 우리 동기들을 여러 부서로 투입하였다. 뿔뿔이 흩어진 우리는 일주일은 선배 옆에서 귀를 쫑긋하며 업무 프로세스를 익혔고 다음 주부터는 실제로 민원인을 대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코로나가 심각한 때라 밖에 있지 못했고 난 빈 사무실에서 종종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엎드려 자고 있을 때였다. 직원 2명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이라 정확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대체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A: 내가 여기 들어온 지 2년이 좀 넘었잖아. 그런데 이일을 30년간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득해.
B: 그러게. 일이 쉽고 어려움을 떠나서 이 업무 익히다 다른 업무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고.
따분한 일을 그리 오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해.
20대 중후반에 공직에 들어온 동기와 50대에 들어온 나는 출발점이 다르다. 9급이라는 출발선은 2021년에 맞춰 있지만 젊은 동기들은 30년 정도 이 부서에서 여러 업무를 맡을 테고, 난 길어야 10년이면 퇴직을 할테니 말이다.
이제야 합격 이후 내 밑바닥에 깔려 있던 불안한 감정의 정체를 완전하지는 않지만 작은 실마리라도 잡은 기분이 들었다. 100세 인생에서 후반전 인생이 50이 되었으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말이다.
50세가 되면 각자 인생의 최종 스코어는 어느 정도 정해졌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왔는데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 여겼다. 흥부처럼 집 앞마당에서 박을 타서 금은보화가 나오지 않는 이상, 미국 개척기 시절 앞마당에 유전이 터져 나오지 않는 이상 인생 후반기의 인생역전은 나오기 힘들다. (물론 ‘인생역전’의 개념이 각자 다르기에 조심스럽기 하지만)
문제는 본인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거 같다.
내가 이해하는 인생 후반기는 과거 전반기의 시행착오를 점차 줄여가고, 있는 그대로의 본인 모습을 인정하고, 과거 삶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 되었거나 뿌연 미세먼지 같은 것을 이제는 내 위주로 단순하고 명확하게 스스로 즐기는 삶을 실행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대박 프로그램이 아닌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나은 삶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에게 소중한 삶에 대한 고민이 요즘 내 주 관심사다. (참고로 MZ세대인 내 동기분들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인생 설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파이팅!)
어제 만난 민원인, 오늘 만나는 민원인, 그리고 내일 만날 민원인을 상담하는 내 직업적 성취감이나 보람이 내 인생의 개인적 목표와 맞닿는 면이 점점 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찾아보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내 눈이 더 반짝거리고 입꼬리가 올라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