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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Dec 01. 2022

51화 너, 보는 눈이 달라졌구나

- 영화 올빼미

11월 30일 몹시 춥던 날 영화를 보러 갔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라 평소라면 금방 갈 수 있었건만 파업 및 준법운행 등으로 지하철역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벼서 마치 도떼기시장을 능가하였다.     

어찌저찌하여 좌석표를 받고 앉으니 몸이 나른해지고 피곤이 몰려왔다. 몇 분의 광고가 휘몰아치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하니 내 몸도 그것에 반응하여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눈에 힘을 주고 스크린을 향해 달려갔다.     

알다시피 영화 올빼미는 인조 시대 소현세자의 독살과 관련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맹인 침술사가 그 중심이 되는 영화다.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해도 기발한 발상에 제법 흡입력이 있어 심장을 쫄깃하게 쥐었다 폈다 한 점은 좋았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꽂힌 대사는 인조로 분한 유해진이 세자에게 ‘너 보는 눈이 달라졌구나’(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ㅠㅠ)였는데, 이 장면은 소현세자가 인조에게 지구본을 천천히 돌리면서 세계를 설명하는 데서 나온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인데 큰 줄기는 이렇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거듭 죄송합니다)  

   


세자가 지구본을 돌리며 이것저것 설명한다.

세자: 아바마마, 이곳이 어디이고, 중국이 여기에 있고, 여기 조그만 곳이 (조선)...

인조: (인상을 쓰며) 뭐 조그만....

세자: 아바마마, 지금 청은 서양문물을 들여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서양문물을 들여와서...

인조: 우리는 명을 따라야 한다.

세자: 명은 이미 망했습니다.

인조보는 눈이 달라졌구나

세자: 조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기침을 심하게 한다)

인조: (세자를 외면하며) 기침이 심하구나. 어의에게 말할테니 치료에 집중하거라     


이 대화가 이뤄지기 전 영화에서 청의 사신은 소현세자에게 통역을 하라고 강요를 하고 통역의 내용은 인조의 됨됨이가 부족해서 폐위시키는 게 당연하나 청 황제가 측은하게 여겨 왕위를 보존케 한다는 사신의 말에 인조는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떤다. 청나라, 청 황제라면 이가 갈릴 정도인데 세자가 신문물을 보여주며 청을 따라 배워야 조선이 살아난다고 하니 인조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인조가 말한 ‘보는 눈’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가치관’이 아닐까 싶다 

    

인조의 눈

성리학을 통해 본 세상. 명나라를 끝까지 추종하는 의리(?)     


소현세자의 눈

서양문문을 통해 본 세상의 변화. 청나라 벤치마킹을 통한 조선의 부흥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에 의해 옹립되었기에 인조는 정묘호란 그리고 병자호란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아니 다른 이가 왕위에 올랐다하더라도 ‘친명배금’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소현세자가 인조 뒤에 왕이 되었다면 그의 말대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세종대에 버금가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어려웠을 듯하다.  

   

소현세자가 국정을 운영하는데 있어 기존의 사대부의 정신적 지주인 성리학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고 다른 실용적인 학문과 문물을 수용한다고 하면 조선의 사대부 및 관료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이해하고 협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시 조선에서는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항복선언을 만회하고자 청을 이기고자 하는 북벌론으로 이어지지만 실제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고 집권세력의 군사적 배경으로 악용되었고, 사상적 배경인 성리학에 대한 통철한 반성이 없이 무조건 청과 관련된 것을 배격한 탓에 청을 벤치마킹할 절호의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건대,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거리에 많은 외국인과 그들의 언어에 당황했을 것이고, 처음 보는 서양의 종교와 문물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고,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청나라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고 밤잠을 뒤척였을 것 같다.  

   

처음에야 인조의 굴욕에 적개심을 안고 청나라에 왔지만 8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청나라를 이길 수는 없어도 조선의 힘을 키우고자 하는 마음을 한 곳에 새겨 언젠가 귀국한 후에 인조의 허락을 얻어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현실로 되돌아 나를 바라본다.

영화에서 인조는 ‘보는 눈이 달라졌구나’ 이 말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난 긍정적 의미로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말을 내 스스로에게 듣고 싶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익혀서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지혜를 바꾸어 이전에 내가 보던 세상을 확장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 마음속에는 인조처럼 현실에 안주하려는 거센 저항이 있을지라도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나에 대해 연구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삶을 이어갈 것인지, 고민하면서 나만의 행복한 삶을 일구고 싶다.     


영화에서 류준열이 소현세자에게 돋보기를 받았을 때 그 놀라운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맹인 침구사는 새로운 눈을 얻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얻고 얼마나 기뻐했는가.       


운동을 통해 몸이 달라지듯, 배움을 통해 내 눈이, 내 마음이, 내 세계가 더 달라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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