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딛는 발걸음에 향기가 묻어나
나는 아침에 되면 미소가 절로 난다. 왜냐고? 곧 있으면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바 안쪽에는 지갑 말고도 사원증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고 사원증에 박힌 회사명과 내 부서명도 아주 자랑스럽다. 길 가다가 누구라도 만날라치면 자랑하고 싶고, 집안에 취업준비생이 있다면 한번 고려해보라고 추천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설 때도 버스에서 내려 출근을 재촉할 때도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되면 아쉬움에 눈 언저리에 소금기 가득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도 한다.
“이게 뭔 개소리냐? 이거 당신 이야기 맞냐?” 라고 묻는다면 아닌데요. 정말 제 얘기가 아녜요. 라고 말한다. 그렇다. 대다수의 직장인은 출근길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으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자존심은 곱게 접어 집에 놓아두는 일은 반복한다.
예전에 난 꽤 오랫동안 백수시절을 경험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어 이왕 감은 눈 영원히 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며, 늦은 아침 또는 이른 점심을 먹고 근처 놀이터 의자에 걸쳐 앉아 주위를 맴도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가만히 멍 때리기도 했다. 쓰고 나니 귀밑까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이제 난 평일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출근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람은 안정감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문을 나서고 버스정류장을 향하며 나는 이리저리 주위를 살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자영업 사장님의 사업준비를 흘낏 쳐다보기도 하고, 매일 마주치는 길냥이가 이번에도 나를 생까는지 기타등등 이런 거 말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길가다 고양이가 지나갈 때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려 잠시 쳐다본다는 말에 ‘나비야’, ‘고양아’라고 불러 보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는 왠지 무시당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시 출근길을 나서며 느낀 소소한 행복을 몇 가지 꼽으면 다음과 같다.
-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갈 곳이 있구나 안도한다
- 전에 아침식사를 안 먹었는데 지금은 뭐라고 챙겨 먹고 나간다
-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맛보며 걷는다 (미세먼지 많으면 제외)
- 이슬이 맺힌 꽃잎이나 잎사귀를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 재잘재잘 노래하는 새소리를 들으면 내 가슴이 나무처럼 푸르러진다
- 손에 우산을 든 사람들을 보며 오늘 날씨를 때려 맞출 수 있다
- 센스 있는 옷차림을 보면 자기다움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 책 읽으며 가는 직장인을 보면 자기계발의 위대한 힘을 느낀다
- 아이 손 잡고 유치원에 가는 부모의 미소에 내 마스크 입꼬리도 올라간다
- 가게 앞에서 힘찬 빗질을 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오늘 장사 잘되길 바란다
-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 배움의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날의 날씨, 내 컨디션, 기분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여러 가지 작디작은 기쁨이 새끼에 새끼를 쳐서 하루를 풍요롭게 한다.
물론 근무지 건물 앞에 다가설수록 기다리는 민원인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노라면 크게는 주제넘게 국가 경제를 걱정하고 작게는 개인의 살림살이를 신경쓰게 만든다. 그리고 이 중에 혹시 ‘특이민원인’이 있지 않을까 지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내 하루 삶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굴러갈 것이고, 그 여정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업무를 처리하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실체를 보이지 않은 불안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담대함을 가지면서 그 두려움에 대처하는 내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출근길 그 순간에 지었던 미소를 잊지 말고 책상에 앉는 순간, 컴퓨터를 켜는 순간, 번호표 뽑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민원인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가볍게 인사하고 방문 이유를 묻는 순간, 이 모든 순간이 내 삶의 주요 구성요소가 되고 어떻게 내 삶의 자양분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하루가 되면 더없이 고마울 것 같다.
직장의 출근길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인생의 출근길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그리고 하늘이 내게 주신 삶의 퇴근길이 임박하면 예전 천상병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나도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에 ‘아름다웠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