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때 김치전을 사야겠다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어쩜 내 맘을 알고 가사며 멜로디며 만들었냐며 감탄한 적이 있다.
어떤 시를 필사하면서 와 이건 지금 내 심정이야 하며 신기해가며 볼펜에 힘을 꽉 세워
한 글자 한 글자 노트에 조각하듯 새겨 넣은 적이 있다.
어, 지금 기억은 안 나는데 시인은 '누군가를 위해 미리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기쁨이나 행복이야 본인이 먼저 알 터이니 어떤 이가 대신할 필요가 적은 반면,
폭풍같은 슬픔이나 아픔은 본인이 직접 맞으면 힘겨우니 시인이 먼저 매(?)를 맞아 울어주면,
당사자는 그 아픔을 조금은 쉽게 흡수한다는 면에서 난 일리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작년만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인이 슬픔을 넘어 기쁨, 환희, 전율같은 매콤한(?) 맛을 먼저 먹고
범인(凡人)은 입꼬리 올라가는 눈물을 나중에 흘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다.
반면 맵디매운 맛을 선호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은 슴슴한 맛을 먼저 맛 본 시인을 따라
자신의 평범한 맛의 영역을 확대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이래서 사람들이 시를 읽는 게 아닌가 싶다.
출근길. 우산을 쓰며 버스를 기다린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타닥 타닥 츠츠츠...
마치 부침개 소리와 비슷하다.
우산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나무가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나에게 슬쩍 말을 건다.
"너 말야, 내가 인제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숨죽인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나무에게 김용택(1948~ )
나무야
봄은 오고 있다
너를 올려다본다
내 나이 일흔여섯이다
이제 생각하니
나는 작고 못났다
그런데다가
성질도 못됐다
나무야
근데 내가 인자
어찌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