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어
지난주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약간은 버거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공자님은 30에 이르러 자신의 뜻을 확고히 세운다는 이립의 경지로 들어섰다고 하는데
난 왜 50되어서도 헤매는 걸까.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 그걸 감안해서 이립의 경지는 좀 뒤로 늦춰져도 괜찮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립=30이라는 언어의 힘이 쉬 바뀌지는 않으니까)
지난 일요일 오후임에도 잠을 자고 있는데 핸디폰 진동소리가 요란하다.
'그냥 생깔까?'
기침을 할 때마다 방구가 뿡뿡 나오는 걸 느끼며 두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해본다.
'그래 그냥 받자.'
전도사님,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메시지로 목사님 설교 링크를 걸어주시는 고마운 분.
고백하건데 나는 그리 신실한 신자가 아님을 고백한다.
언제 교회에 나갔는지 까마득한 기억 속을 뒤져봐도 그날을 모르겠고,
삶의 어두운 파고가 밀려들 때조차 마지못해 두 손을 붙잡고 그분의 이름을 읊조리지만
실제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종교를 물으면 전 '크리스천'이에요라고 당당히 말하고 다녔다.
전도사님은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일은 어떤지 물으셨고, 핸드폰을 통해 기도를 해 주신다.
마음이 순간 편안해졌다.
나야 그야말로 탕자 중의 탕자(?)인데 때마침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니......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졌다고 얼굴 지푸리고 마음이 한없이 처졌을 때
그 어디에선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모든 종교적 행위로써 기도를 포함하여)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누구라도 충분히 위로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날 내 가슴이 유난히 따뜻함을 느꼈다.
설일(雪日) 김남조(1927~2023)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