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도 꼬박꼬박 약도 꼬박꼬박
한 달 마다 병원에 가서 수치를 확인하고 약을 타오는 날이 그제였다.
좀처럼 수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원장님이 걱정어린 눈길로 바라본다.
평소같으면 이 병에 대한 운동과 식사조절이 같이 이뤄져야 하고,
평생 같이 가는 친구처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등 잔소리 아닌 잔소리(?)와 호통을
늘어놓는 분인데 오늘은 내 표정을 보더니 말을 아끼신다.
원장님은 내 기록지 바라보고 내 얼굴 바라보고 몇 번을 번갈아 하는 동안
난 병원 천장을 말 없이 응시했다.
이번엔 약 처방을 바꿔주신다.
저녁에 먹는 약과 아침에 먹는 양을 반씩 나눠주었다면
예전처럼 저녁에 한번 먹는 걸로 한 달치 약을 잘 먹어보라며 한 마디 덧붙인다.
"난 OOO 씨가 정말 호전되면 좋겠어요. 진짜로"
진심이 묻어나는 낮으면서도 부드러운 말에
몸과 마음에 잔뜩 붙어있는 이름모를 불안감이 중력을 잃은 채 창문밖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조제실에서 약을 기다리는데 자꾸만 귓가에 그말이 떠나질 않는다.
고향 백석(1912~1996)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나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을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