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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Mar 25. 2024

어딘가 숨어있을 여유를 찾아서

- 주말에 방해없이 늦잠을 즐기고 싶다

우리집 앞에는 아담한 놀이터가 있다.

2년 전에 어르신들이 자주 머물던 팔각정이 없어졌고 그 자리에 미끄럼틀과 정글짐이 대신하였다.

내가 사는 곳은 중장년층의 인구비율이 제법 높은 구에 속한다.

이곳에 모인 사람을 보면 어르신 8 청년 2의 비율이랄까

보통 이곳에선 어린친구들은 시소를 타거나 미끄럼틀에서 장난을 즐기고

나이가 제법 찬 어르신들은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즐기거나 바둑 등을 두기도 한다.


문제는 이곳에 어르신들 때문에 사건사고가 제법 일어난다는 점이다.

바닥에 박스를 펼치고 막거리나 소주를 먹는 분들이 계신데

아마도 비가 오지 않는 이상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술자리를 즐기는듯하다.

처음에 마실 때야 형님 아우 하며 분위기가 좋다지만 나중에는 이놈 저놈 욕설과 함께 목소리는 점점 

커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속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경찰관 목소리.


졸린 눈을 비비고 문을 열고 2층에서 내려다보면

보통은 어르신 2명이 실랑이를 하고 경찰관 한 분은 가운데 껴서 몸싸움을 말리고

다른 경찰관은 수첩에다가 연신 무언가를 쓰고 있다.


왜 반말해

내가 누군가 알라

너 나이가 몇 살이야

네가 뭔대 이 지랄이야

기타 등등


주말에 늘어지게 늦잠을 즐기는데 이런 다투는 소리가 나면 아주 짜증이 난다.

그래서 작년에 한번은 내가 고래고래 욕을 섞어가며 그분을 타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말마다 이지경이 되니까 나도 지쳐서 그냥 그려러니하고 빨리 그 상황이 끝나기만 바라는 상황이 되길 바라게 되었다. (아마 평일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나이 제법 잡수셨고

소싯적에 나름 한가닥 했을 분들일텐데

세상 풍파를 견디면서 이런저런 연륜이 쌓였을 텐데

왜 여기서 이러고들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유'가 없어서 아닐까.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경제적 인심, 심리적 인심, 시간적 인심, 공간적 인심, 일상적 인심......

어떤 이름의 인심이든 결핍이 발생하면 그 무엇을 채워야 하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도저히 그 갭을 좁히지 못하면, 마음이 강퍅해지고 점점 여유가 없어져서

본의아니게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내 나이도 5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남말 할 게 못 된다.

나도 항상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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