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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Mar 29. 2024

목련이 비에 젖으면

- 하얀 목련이 자리한 가슴 한 껸

요즘 평일 걸어서 출퇴근 스쳐지나가거나 집 근처 마실 나가면 

담장 옆 다소곳이 목련꽃의 탐스러운 자태를 볼 수 있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흐른 뒤 목련은 오늘처럼 비를 맞으면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다 

바닥에 무언가 속삭이듯 남모르게 낙화할 것이다.


예전에 난 목련이 지면 바닥에 바짝 옆드려 꽃송이의 하얀색이 검게 바래지는 것을 보노라면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었다. (더럽다는 느낌보다는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나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작년 도서관 프로그램 강좌를 듣던 중 

김훈 작가님의 '자전거 여행' 이라는 글을 통해서였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참혹하다 (중략)

목련 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지켜본다. (중략)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그래. 맞아. 이 글을 읽고 목련꽃에 대한 나의 시선이 약 90도는 옮겨진듯 했다.

그리고 올해 시를 필사하면서 복효근 시인의 '목련 후기'를 접하고서 그 나머지 90도가 바뀌었고

이제 난 목련 꽃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해마다 봄이 오고 내가 목련 옆을 지나면 양희은 님의 '하얀목련'을 흥얼거리다 

복효근 님의 '목련 후기'를 음미하는 시간을 기꺼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을 피어나고 /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길 바라는가"



목련 후기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길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길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 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 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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