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둘기야 점심도 꼭 챙겨 먹으렴
새벽이다. 창가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들으며 오늘은 출근을 서둘러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미 잠이 깨었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면 안 좋다는 걸 알지만 우선 일기예보를 봐야겠다.
점심 때까지 비가 오고 오후 내내 흐리다는 걸 확인하고 점심 때 밖으로 나가야 할지
아니면 안에게 간단하게 때워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난 비오는 날에는 왠만하면 일찍 나간다.
버스 안에 붐비는 사람들
갑작스런 우산의 공격(?)
향수 비스무리한 냄새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은 많다. 하기야 사람 생각이 거기서 거기지 라고 생각되기에
딱히 불만은 없어도 불편한 건 사실이다.
버스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마치 거대한 주차장 같다.
그 위로 빨간 우산, 노란 우산, 검은 우산 등 얽기고설켜서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비는 우왁스럽게 뿌려대고 우산도 퍼런 멍이 들 태세다.
급히 나는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 음식점 앞에 비둘기 열댓 마리가 모여 있다.
콘크리트 바닥에 쌀이 잔뜩 널부러져 있었고,
녀석들은 고개를 처박고 구구구 소리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쌀 한 톨이라 놓칠세라 머리의 상하운동은 급격히 빨라진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보이지 않는 곳곳에
비둘기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한 끼 밥벌이의 고단함을 잠시 쉬게 해 준다.
물론 비를 맞아야 하는 수고로움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고.
그 골목길의 벗어나며
오늘은 나도 밥벌이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쉬게 해주는 이벤트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 오늘 월급날이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