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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건 Nov 23. 2023

첫사랑과 헤어지다.

무너지지 않던 일상과 덤덤한 이별의 과정

나의 첫 사랑과 1년이 넘게 만났다. 500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내 생일도 얼마 납지 않을 무렵에 나는 전화로 그만하고싶다 말을 꺼냈다. 내일 무사히 일어나려면, 이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야만 했다. 

더 이상은 버틸 힘이 조금도 남이있지 않았다.





기다렸다. 그 애가 한가해질 때를, 그 애가 나를 돌아봐주고 나와 함께 웃을 그 시간들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바쁘지 않고 나를 봐줄 시간을. 강아지가 된 것 같은 연애였다. 그랬는데 어느새 그 애는 타지로 몇 달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은 즉시 헤어지자고 했다. 미래가 없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의 우리의 상황과 감정을 네가 어떻게 아냐며, 너무나도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해왔다. 나는 납득이 가지는 않았지만 너를 사랑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너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야. 지금까지도 기다렸는데.


한 달, 일 년이 흘렀다. 바뀐건 없었고 난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외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에게 닥쳐온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평생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 애는 아니라고 하겠지. 나도 많이 노력하고 있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고. 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낮잠도 줄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럼 나만 바쁜데 보채고 힘들어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연인이 바쁜 시간을 보내는데 보자고 보채는건, 해선 안될 짓 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그래서 난 또 입을 닫았다. 단지 응원하고 열심히 서포트하고, 애교를 부린다.


추워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의 밤, 익숙한 이불에 누웠다. 고달픈 날이었다. 특별히 더 그랬다. 오늘 아침 외국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겠지. 눈치보며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임이 느껴진다. 난 그게 더 아프다. 우리는 함께 있으면 죄인이 된다. 그 사실이 여느때보다도 사무친다. 내 이해와 감정은 닳다가 너덜너덜해졌고 기대라는 감정은 찢기고, 아물고, 부풀면 다시 찢어짐을 반복하다가 이제는 곪아간다. 너도 양보할 마음은 없고, 나도 더 이상은 기다릴 힘이 없다. 난 강아지가 아니었다. 너와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날은 더욱 추워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그와 함께 나의 생일도 점점 가까워온다. 네가 외국을 다녀 온 이후에 우리가 만났다면, 그 때는 뭔가 달랐을까? 내가 더 참을성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내가 더 착하고, 내가 더 너를 사랑하고, 내가 더 잘해줬더라면 네가 한국에 남기로 했을까? 난 단지 너와 함께하고싶었다. 그저 너와 손 잡고 길을 거니는 그 순간이, 네가 내게 안겨 온기를 나누던 찰나가 몸서리치게 좋았고, 너의 연락을 보고 있던 내 입꼬리는 단 한 순간도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때가 없었다. 나는 늘 그랬다. 난 너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너의 행복만을 바랬다. 


네가 원망스럽다. 나를 두고 가는 네가 싫다. 내가 너의 행복을 바란만큼, 너도 나의 행복을 바라진 않을까, 그래주진 않을까. 내심 바래왔던 것 같다. 네가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보고싶어져서 한국에 남아주지는 않을까, 기적을 바랬다. 그래서 더 열심히 서포트했다. 내 이기적인 욕심으로 기적을 바랬고, 내 저열한 마음이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우리의 관계를, 지탱해왔다. 수십 수백번은 더 놓고싶었던 이 관계를 다시 한 번, 한 번만 더, 다음주 까지만, 이번 달 까지만, 이 시험만 끝나면, 지금은 힘든 시기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면서,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커져가는 사랑과 원망, 닳아가는 내 마음과 정신, 너덜너덜해진 심장과 추워진 날씨에 여느 때보다도 더욱 차가워져있었던 내 머리가 한계에 달했음을 고했다. 


이 관계를 지속하면 나는 무너진다. 


우리, 그만하자. 나 지쳤어.


그동안 고마웠고


조심히 가.


고마웠어.


안녕.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의 맹세와 좋았던 순간들이 우리를, 나를 스쳐지나가며 땅바닥에 처박힌다. 그 꼴이 너무나도 안쓰럽고 슬퍼서 무릎이 까지는줄도 모르고 달려가 무릎꿇고 다시 주워담는다. 눈물까지 주워담을 시간은 없다. 지금 이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들이 무너진 댐에서 나오는 물마냥 쏟아지고 있는데 어찌 그럴 시간이 있으랴. 주워담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댐을 무너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너무 벅차다. 그 댐은.


잠시, 잠시만 쉬고싶다. 나쁜 놈이고싶지 않아서 그동안 그렇게 버티고 착한 척 하며 지내고 아양을 떨고 좋은 모습만 보여줬는데, 결국엔 이기적인 나쁜 놈이 됐다. 태생은 속일 수가 없나. 결국 들켰다. 나 나쁜 놈인거. 너 빼고 다 아는데. 10년지기 친구들도 알고 우리 부모님도 안다. 효도도 안하는 나쁜 놈. 너한테만 착한 남자이면 난 그걸로 족했는데. 네가 우선순위를 말할 때 네가 1순위, 연애가 2순위라고 할 때도 나는 꿋꿋이 네가 1순위라고, 그 다음이 나라고 했는데. 내 세상의 중심을 너에게 주고 나는 그 주위를 도는 별이 되었는데. 말 그대로 내 우주의 중심을 넘겼는데. 네가 내 삶의 이유였고, 네가 빛이었고, 난 너 하나로 웃고 울었는데.


이 이별로 많은 것을 배울 것 같다. 많이도 슬퍼하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시간만은 나에게 위로를 건내겠지. 그럼 또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랑노래, 이별노래 보다도 요즘 꽂힌 노래가 있다. "fast forward" - "how many lovewr do I go through to find you". 너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연을 거쳐야 하는 건지, 그리고 하이라이트가 fast forward, 빨리감기다. 이러한 고통을 얼마나 거쳐야 종착지가 보이는걸까. 정말 이를 악물게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런게 인생의 아픔이라면 이딴 인생, 이딴 인생....


그래도 살아가야한다. 그래도, 삶은 흐른다. 시간도 흐를거고. 한달 뒤에 보면, 아프려나? 그래도 일 년 뒤에 보면 괜찮겠지. 그렇게 다들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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