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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건 Aug 15. 2024

퇴화한 물고기

최근 너무나 많은 물고기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분류를 시도했다. 남태평양 부근의 물고기, 대서양의 물고기, 동해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 그러나 그들을 구별하여 구분하는 작업이 피로하다고 느껴지자마자 그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함께 헤엄쳤다. 아가미로 숨을 쉬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뭍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점프했다. 지느러미와 꼬리는 없지만 물의 흐름을 느끼며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녔다. 작은 전율을 느끼면서 헤엄치니 이 작은 단칸방도 태평양 못지않은 크기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위화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헤엄이라니, 수영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물고기가 되었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였으리라. 이것은 척의 결과물도 아니었으니 마음에는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헤엄이나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생각 용솟음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에도 물고기들은 더욱 많이 찾아왔고 이내 나는 물고기를 헤엄치게 되었다. 나의 태평양은 점점 확장되어 그야말로 광활한 장소가 되었다.     


숨을 쉬지 못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물고기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평생동안 살 수 있지? 아, 아가미가 있지. 나는 왜 아가미가 없을까. 바보같은 생각이 뇌수에서 뿜어져 나왔다. 내 등록금으로 터졌던 대학교 축제의 폭죽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들은 뿜어져 세상과 접촉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진취적으로 나아갔다. 진취적으로 나아가 추종자를 불러일으켜 혁명의 깃대를 높이 솟게 했으며, 일당백의 무리는 시내를 휩쓸며 폭동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아니, 병정놀이를 하는 남자 아이들 30명이 휩쓸고 지나간 무법지대, 그들의 주 무대인 놀이터의 모래밭처럼.      


나는 여전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제 내 발과 손은 쭈글쭈글해지다 못해 퇴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빠른 진화라니, 아니 퇴화라니. 점점 잘 헤엄치게 되었고 두려움도 쑥쑥 자랐다. 이러면 다시는 육지에서 두 발로 설 수 없을 텐데. 물에서만 숨 쉴 수 있는 아가미가 내 코의 자리를 빼았는다면 앞으론 지상에서 살 수 없을 텐데. 지금 내가 빠르게 퇴화하는 것처럼 그때 나는 다시 빠르게 진화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게 진화이고, 그게 퇴화인가? 아니면 둘 다 진화인가? 생각은 점점 가빠졌고 물고기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나는 물고기가 되어 물고기를 헤엄쳤다.      


물고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다. 물고기는 내 척수에서 태어나 척추를 뚫고 나와 진취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물고기는 마치 기대만발로 들어갔지만 무대에 서보지는 못한 어느 비운의 밴드부 보컬의 한숨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눈에서는 그들을 반기고 먹여 살릴 물이 나오고 있었다. 물은 곧 바다이자 물고기이자 생명이 되었고, 물고기들이 가여워진 나는 물고기가 되었다. 사실은 물고기가 나를 가여워하여 기도한 나머지 내가 물고기가 된 것이다. 내가 물고기와 물을 낳았지만 정작 가여운 것이 내쪽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앞뒤란 없었고, 나는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의 앞뒤 사이에 낑겨 살아가는 난파되지 못한 난파선같은 존재로 거듭났다. 진화했다.      


정신은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태블릿을 두들기는 카페로 돌아온다. 카페에는 어디선가 들어온 색소폰 멜로디의 재즈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더운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긴 소매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 눈길을 끈다. 유별나다기보다는 부럽다. 나도 그들처럼 더위를 덜 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눈에서만 눈물을 뿜어낼 줄 아는 교양있는 신사가 되고 싶어라.    

 

물고기에서 인간이 되어보니 모든 게 분명해졌다. 이것은 퇴화다. 나는 물고기를 헤엄쳤을 때 모든 것이 분명했고 자유로웠고 시원했으며 생각은 덜했고 감정이란 없었으며 원하는 것이라고는 없는, 집단과의 물아를 이루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이젠 사람이다. 이것은 명백한 퇴화다. 나는 다시 헤엄치는 게 싫고 물이 두렵고 생각이 많은 불쌍한 남자가 되었다. 맥주는 두려움을 잡아 변기로 데려간다. 그의 앞에 놓인 건 커피 따위가 아니라 한낮의 맥주였다. 그는 북카페의 1인 테이블에서 오후 3시에 맥주를 시켜 재즈를 들으며 앞으로는 책을 펼쳐놓고 저녁은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한다.     


평범한 물고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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