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건 Nov 24. 2023

허무와 만나다.

이별 후 공허한 감정, 갑작스레 색채를 잃어버린 나날들

허전하다. 매 순간 연락하고 함께하고 내일을 그리던 이가 갑작스레 인생에서 사라진다는건 이런 것이다. 공허하고, 또 허하다. 옆구리가 시리다. 있어야 할 그곳에 있던 무언가가 증발했다. 패딩을 입었다가 벗는 그 순간에 해방감도 느껴지지만 공허함도 함께 느껴진다. 해방감은 사라지고 빈공간만이 남았다.


 



모두 이별의 순간을 겪습니다. 친구와의 이별, 연인간의 이별, 부모님, 그게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고 또 갑작스레 우리에게서 그들을 앗아갑니다. 나와 가까이에 있던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그 순간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자리에 있던 당연한 사람이 없다는 그 소실감, 외로움, 공허함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허무와 관련된 감정을 겪게 되면서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어떠한 순간을 함께했는지를 추억하며 그 감정을 더욱 키워냅니다. 


요즘 저는 간헐적으로 공허해집니다. 위로하는 노래를 들으며 괜시리 울컥하기도 하고, 이별에 대해 노래하는 가사를 볼 때면 지난 날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이별 후 공허한 그 순간들을 어떻게 버텨내셨나요? 다만 시간이 흐르길 고대하고 기원하면서 담담히, 그리고 무심하게 여러분의 일상을 마주하셨나요? 아니면 더욱 박차를 가해 시간이 가는줄도 모를만큼 바쁜 일상을 영위하며 털어내셨나요. 전 공허를 간직하고 소중히할지, 이 감정을 빨리 털어내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 같네요. 제가 느끼는 이 감정마저도, 그 사람과 행복했고 또 소중히 했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그게 나를 더 감상적으로 만듭니다.


사람 하나 일상에서 없어졌을 뿐인데 제 목표가 흔들립니다. 이걸 왜 하고있는걸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의심하지 않고 달려왔던 것들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왜일까요. 고작 사람 하나 떠나갔을 뿐인데요. 앞으로 나와 스쳐 지나갈 사람만 해도 수천명일텐데, 그 사람이 뭐길래 그이의 그림자마저 나를 잡고 이토록 강하게 흔들어대는 걸까요. 내 안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존재이길래 떨림이 멈추지 않는 걸까요. 얼마나 아프길래 계속해서 눈물이 나는 걸까요. 얼마나 아파해야 이 슬픔과 고통과 공허가 메꾸어질까요. 마음껏 슬퍼하게 두는 지금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그런거 아닐까요. 토니 스타크가 마음이 있다는 증거... 같이, 나에게 사랑이 있다는 증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증거로 나는 아픈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제 인생 첫 이별입니다. 이토록 사랑했던 사람과 하는 첫 이별이요. 그래서 더욱 각별하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이 감정을 빨리 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겁니다. 허무를 마주하는게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따뜻한 온기를 그 차디찬 공간에 계속 넣겠습니다. 아파하는 나의 내면을 소중하게 보듬어주고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그 가시가 스스로를 찌른다 하더라도, 고통이 다른 고통으로 전이되는 것 뿐이라 하더라도 저는 감내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제 첫사랑에게 바치는, 마지막 순간이자 감정이기에. 완벽하지도 않고 서투르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 최선을 다해 아파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활기찬 나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보여주어야 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별이니까요. 그것이 허무의 색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담담히 아픔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비어있음을 인식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