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by 이동건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이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 사랑하는 이들과 나를 이루는 가족. 무엇하나 잊지 않았고 잊지 않으려는 시간 속에서 홀연히 사라진 나를 찾아 헤매다 보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자면 파도 소리가 들린다. 보잘것없는 몸이 바다가 된다.


너랑 친해지기 전이 더 좋았어


우리 사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린 너는 사려 깊지 않은 말을 쉽게 뱉었다. 여린 나는 그런 말들에 깊게 베였다. 목소리를 잃은 파도가 넘실거린다. 몇 번이고 모래사장을 철썩인다. 모래는 대답하지 않는다. 존재는 작은 흔들림으로부터 쉽게 위협받고, 확인받지 않으면 금세 무너지고 만다. 모래로 부딪혀 오는 파도는 무엇으로부터 흔들렸을까. 바다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끝없이 향해 나와 소멸하기 직전,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었다.


세계는 감정이 없다. 그곳에서 따스함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한기를 느끼며 뼛속까지 차오르는 무언가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나는 따뜻하게 잠들 때도 불안을 느낀다. 이것이 언젠가 빚으로 남아 돌아오지는 않을까. 기쁨은 빚이 아닐까? 어느 화창한 눈이 내리는 날, 미사일이 날아와 나를 말끔히 날려보내기 직전, 뜨거운 빛과 밝은 열기를 느끼며 주마등을 마주할 시간이 다가올까 겁이 나. 그래도 나는 너랑 친해져서 좋았어. 가까워져서 미안해.


꿈이다.

바닥이 내려앉는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차례를 기다리는 동자승의 미소를 보고

산산이 부서지는


무엇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슬픔에 익숙해졌다. 슬프지 않은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은 살만해졌다. 사람들과 멀어진다. 가까운 사이가 되기엔 무섭다. 그저 사려 깊지 않은 말들을 주워담아 주머니에 채워 넣는다. 날카롭게 삐친 가시에 헤져간다. 그들의 안온한 삶을 지켜주고 싶다. 줍지 않아 네가 찔릴지도 모를 미래를 모른 척하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는 파도의 자식으로 태어났나 봐. 둥실 거리는 햇살을 느껴. 천천히 변하는 온도를 느껴.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을 봐. 부서진 어미의 웃음을 들어. 차분하게 안겨 오는 죽음을 느껴. 소용돌이치는 바람을 감싸 안아. 눈물이 내리면 소중히 모아 다시 돌려줘. 괜찮지 않을까? 난 이런 방식만을 알아. 큰 고래의 순환과 상어의 희생은 나에게 와 닿지 않아.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모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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