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날의 기억처럼, 언제나 제 마음에 피어 있는 당신.
8살에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매년 방학이면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 댁에 내려갔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쯤엔 혼자 기차를 타고
내려갔던 기억도 있다.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
할머니 댁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들어갔는데
그 버스는 오전에 1대, 오후에 1대,
이렇게 하루에 딱 두 번만 운행했다.
시골에 첫째 아들의 자식인 우리가 내려오면,
할머니의 또 다른 전국의 손자 손녀들도
할머니 댁으로 모여들었다.
고모 아들, 작은아버지의 딸…
어릴 땐 그저 시골에 내려가 사촌들과 노는 게
즐겁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손주들을 반기고 보살피던 할머니가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우린 할머니가 새벽같이 밭에 나가시면
우리끼리 놀기도 했지만,
작은언니와 나는 그래도 조금 컸다고
할머니 밭일을 옆에서 돕곤 했다.
할머니가 들깨를 심으실 땐
우리는 깻모를 두세 개씩 골라서 할머니께 드리며
그 옆에서 따라다니던 기억이 아주 선명하다.
“줄기가 튼튼한 걸 골라야 한다.”
할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할아버지가 과수원에 농약을 치실 땐
우린 노란색 농약 줄을 중간에서 잡아당기며 도왔다.
한낮엔 해가 너무 뜨거워, 농사짓는 어른들은
점심 먹고 한숨 주무시곤 했고
우린 그 사이 강에 나가 물놀이를 했다.
근처에 사시던 작은아버지가 오시면
작은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도왔고,
끝나면 우리를 데리고 강으로 가
민물조개를 잡던 날들은
늘 즐겁고 설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빨간 다라에 한 다라 가득 조개를 잡아오면
할머니는 호박잎을 따고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셨다.
그 안에 올갱이를 넣고,
우리는 바늘 하나로 그 속살을 빼먹으며
여름을 먹었다.
어릴 적 나에게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준 그곳,
내 고향엔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리고 작은아버지도…
그 시절,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부모님은
여행을 자주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를 시골에는 자주 보내주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선택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할머니는 그 많은 손주들을
어떻게 화도 내지 않으시고 돌보셨을까?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새삼 더 크게 다가온다.
할머니는 내 동생을 조금 더 예뻐하셨다.
장손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곰국을 끓이시면 거기에 파를 살짝 넣어
할아버지와 동생에게만 주셨다.
나는 그 곰국이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내 동생은 할머니의 그런 사랑을 기억할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는 지금도
전화하면 언제나 “사랑한다” 말씀해
주시는 우리 할머니.
어느 날 언니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할머니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평생 일만 하며 살았으니 너는 가고 싶은 데 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삶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아버지 이야기도 들었다.
어릴 적 큰아들이 학교에 가려면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강을 건너셨다고 한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키운 아들은 안타깝게도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내가 25살, 첫 직장 워크숍에 참석한 나는
아침에 아빠 잘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건네고
나왔지만 점심에 아빠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밭일을 하시던 할머니도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큰아들의 상갓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남편을 보내고...
그 모든 세월을 가슴에 안고, 살아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지금의 남편과 함께
좋은 고깃집에 모시고 갔던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는 고기를 드시며 “이런 데는 평생 처음 와본다”라고 너무 맛있다며 크게 기뻐하셨다.
그 말 뒤엔 단지 음식의 맛이 아닌,
손녀의 사위가 자신을 정성껏 모셔준 그 마음이
참 고맙고 따뜻했다고 느껴지셨던 것 같다.
그때 그 말이 지금은 가슴에 깊이 맺힌다.
두 분은 언제나, 절제된 말속에
삶의 지혜를 담아 전하셨다.
얼마 전, 할머니 생신을 맞아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다.
할머니를 모시고 점심을 먹고,
복사꽃이 흐드러진 밭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고향집, 어릴 적 나의 웃음소리와
할머니의 부지런한 발걸음이 배어 있는 그곳이
이젠 1년 후면 물에 잠긴다고 한다.
3년 전, 많은 비로 인해 댐에서 물이 방류되며
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겼고, 그중엔 할머니 댁도 있었다. 수자원공사가 침수 지역을 수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남기고,
그 기억을 마음에 조용히 담고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 속에
어릴 적 할머니의 손길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떠나는 날, 우리가 차에 오를 때마다 슬며시
눈물을 훔치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 당신의 사랑이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어요.
늘 감사하고, 늘 사랑합니다.
자주 연락드리고, 자주 찾아뵐게요.
그 여름날의 기억처럼,
언제나 제 마음에 피어 있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