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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수 Feb 06. 2023

남들이 내 특별함을 알아주길 원한다면

퇴근했으니 재즈 엘피 006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타임 아웃’

The Dave Brubeck Quartet - Time Out

2012년 아날로그 프로덕션(Analogue Productions) 45rpm 에디션 M/M 기준


A면

Blue Rondo à la Turk

Strange Meadow Lark


B면

Take Five


C면

Three To Get Ready

Kathy's Waltz


D면

Everybody's Jumpin'

Pick Up Sticks


앨범 이야기

요즘이야 제법 있지만 당시는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대학원까지 간 사람이다. 게다가 음대, 게다가 재즈. 연구 주제가 적성에 잘 맞았는지 대학원 생활 중 현대음악가들과 교류했다.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에게 배운 적이 있고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에게 가르쳐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음악에는 실험적 시도가 자주 튀어나온다. 이 앨범만 해도 그렇다. 모든 곡에서 박자에 대한 실험적 시도를 한다. 첫 곡 ‘터키식 푸른 론도(Blue Rondo à la Turk)’부터 독특한데 빠르고 간질간질한 리듬으로 시작해 나긋한 리듬으로 나아갔다, 다시 빠르고 간질간질한 리듬으로 돌아와 곡이 끝난다. 찾아보니 9/8박자로 시작해 4/4로 넘어갔다 다시 9/8박자로 돌아온 것이라 한다.


브루벡의 위대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었단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위대한 자아의 거대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예술가와 늪 밑으로 가라앉아버린 그 결과물을 본다.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건 후일 세상이 그를 다시 평가할 것이든 어쨌든 간에 나는 관심 없고 너도 관심 없고 다수 대중은 관심이 없다. 이해할 수 있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흥미도 없다. 물론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살피면 재미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공과금도 내야 하고 분리수거 쓰레기도 내다놔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기도 돌려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고 잠도 자야 한다. 그 예술가의 자아가 아니더라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에 흥미도 못 끄는 것에 시간을 쓸 순 없다.


그런데 브루벡의 곡은 흥미 만점이다. 독특한 이론과 시도를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좋고, 이 ‘듣기 좋다’가 중요하다. 예컨대 이 앨범을 대표하는 곡 ’Take Five’를 들으면, 어쩌네 저쩌네 말하려는 의지에 앞서 일단 듣기 좋아 권하고 싶다. 드럼과 베이스의 흥겨운 리듬으로 시작해 곧 결이 고운 알토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화려한 드럼 브레이크를 지나 주제가 반복되고 페이드아웃 없이 깔끔하게 끝난다. ”토요일 오후에 듣기 좋은 노래란 이런 겁니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좋은 느낌의 곡이자 다시 듣고 싶은 곡이며, 아까 들으며 느낀 그 독특한 인상은 왜 그런 것인지 살펴보고 싶다. 그래서 다시 들으며 살펴본다. 여전히 좋은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가운데 구글에서 찾은 정보엔 이런 게 써 있다. “아까 색소폰을 분 건 폴 데스먼드(Paul Demond)이며 데스먼드는 브루벡 평생의 음악적 파트너 같은 사람이다. 심지어 작곡도 브루벡이 아닌 데스먼드가 했는데 파트너인 만큼 브루벡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며 곡을 쓴 게 분명하다. 그 증거는 앨범의 다른 곡들이 한 시도와 마찬가지로 이 곡 역시 5/4박자란 점이다!”


그렇게 듣는 이는 자연스럽게 곡 배경의 정보로 나아가며 그 과정 중 곡과 앨범과 브루벡의 위대함 역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결국 특별함이 드러난 것은 일단 듣기 좋기 때문이다. 브루벡은 실험정신이 있는 사람이라 대다수의 앨범에 일반적인 재즈 연주자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묻혀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편하며 경쾌한’ 음악은 듣는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친절한 말솜씨로 자신의 세계를 살펴보라며 유혹한다. 난 이게 브루벡이 위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독특한데 흥미로운 음악, 흥미로운데 독특한 음악. 쉽게 다가설 수 있어 쉽게 즐기다보면 어느새 기묘한 지점이 보이고 어느새 그게 왜 그런 건지 살펴보게 되는 음악. 이 앨범에는 그런 음악들이 들어 있다. 무관심하게 들어도 좋지만 듣다보면 어느새 자연히 그 심오한 세계에 관심이 생길 것이다.


남들이 내 특별함을 알아주길 원한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일단 특별해야 하고, 특별함을 알아보게끔 할 수단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대다수는 전자에 그치고 만다.


엘피 이야기

콜럼비아(Columbia Records)의 ‘식스아이(Six Eye. 마치 여섯 개의 눈이 그려진 것 같은 모양의 라벨)‘ 시절에 나온 앨범이라 퍼스트부터 음질이 훌륭하다. 게다가 공개 당시부터 잘 된 앨범이다보니 제법 많은 양의 퍼스트가 만들어졌고, 그만큼 컨디션 좋은 물건도 많이 남았으며, 결국 퍼스트도 가격이 나쁘지 않다. 다른 명반들, 예컨대 ‘포트레이트 인 재즈(Portrait In Jazz)’나 ‘미츠 더 리듬 섹션(Meets The Rhythm Section)’ 같은 앨범들에 비하면 충분히 저렴한 가격에 퍼스트 에디션을 구할 수 있다. 퍼스트부터 모노와 스트레오가 나눠져 나왔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모노는 모노대로 장점이 있고 스테레오는 역시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


어느 시대에 누가 들어도 세련된 앨범이다보니 리이슈 역시 대단히 여러 번 등장했다. 엘피만 해도 300개 가까운 에디션이 있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만든 라이센스 에디션도 있을 정도(재즈 중 이런 앨범 흔치 않다). 독일의 ‘뮤직 온 바이닐(Music On Vinyl)’과 ‘소니(Sony. 이 앨범을 낸 럼비아를 산 CBS를 소니뮤직이 샀다)’의 리이슈가 싸고 괜찮다.


45rpm 에디션으로도 몇 번 나왔는데 일본 ’소니 CBS‘ 시절 나온 물건과 ‘클래식 레코즈(Classic Records)’ 물건은 구하기가 어렵다. 미국 ‘아날로그 프로덕션(Analogue Productions)’에서 나온 물건이 구하기 쉽고 프리미엄도 안 붙어 추천할만 하다. 가장 좋은 음질로 듣고 싶다면 AP의 45rpm 에디션을 사면 된다.


같이 들어볼만한 앨범들

데이브 브루벡의 2020년작 ‘자장가들(Lullabies)’: 그의 마지막 스튜디오 레코딩 앨범인데 무려 91세에 녹음했다. 손주들을 생각하며 연주한 곡들이라는데 느슨하고 나른하며 따듯한 피아노 곡들이 이어진다. “해볼 거 다 해보다 못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다 해본 분이 초심 전까지 돌아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들을 수 있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1957년작 ‘DDD(Dave Digs Disney)’: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유명한 곡들을 재즈란 수단으로 다시 해석했다. 이 무렵 재즈 연주자들 중 디즈니 곡들을 다룬 사람이 몇 있는데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도 그렇고 빌 에반스도(Bill Evans)도 그렇고. 브루벡이 그 흐름에 올라탄 것인지 그 흐름을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잘 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브루벡을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인 ‘따듯한 정서’가 이 앨범에도 잘 녹아 있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2020년작 ‘라이브 앳 더 커하우스(Live At The Kurhaus)’: 1967년 라이브인데 녹음본이 반세기동안 잊혀졌다 2020년에야 음반으로 만들어졌다. 잊혀진 라이브 녹음을 발굴해 출시하는 게 전문인 레이블 ‘더 로스트 레코딩스(The Lost Recordings)’에서 낸 앨범인데 로스트 레코딩스는 특징이 하나 더 있으니 마스터링 실력이 빼어나다는 점. 대단히 선명한 음질로 빼어난 라이브 레코딩을 들을 수 있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1958년작 ‘재즈 임프레션즈 오브 유라시아(Jazz Impressions Of Eurasia)’와 1964년작 ‘재즈 임프레션즈 오브 재팬(Jazz Impressions Of Japan)’: 브루벡의 스승이자 평생 클래식에 딴 거 버무리는 작업을 한 미요의 방법론을 따르는 앨범들이다. 브루벡이 여행과 상상으로 얻은 아시아의 인상을 재즈에 버무려 만든 앨범들인데 당대 일반적인 재즈 앨범들과는 사뭇 다른 무드가 담겨 있다. 다만 이러나 저러나 브루벡 앨범인 만큼 편안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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