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꿈
82.
집을 나서기 전, 아내는 아기에게 썬셋증후군이 있다고 합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이 되면 아기는 예민해집니다.
낮이 가고 밤이 오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했던 인류에게 오랫동안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낮에는 숨어 있던 위험들이 밤이 오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시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어도 인간의 유전자는
아직도 먼 옛날 존재하던 어둠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내를 안심시킵니다.
조카가 여섯이나 있어서 나는 제법 어깨 너머로 보아온 것들이 있습니다.
출산 후 아기를 두고 첫 외출을 나가는 아내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봅니다.
83.
서쪽하늘이 노을로 물들기 전에 아기를 씻길 채비를 합니다.
신생아용 하늘색 욕조에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을 채웁니다.
옷을 벗기고 심장에서 먼 발부터 조심스레 적십니다.
미리 비누거품을 내둔 가제수건으로 아기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목덜미와 귓바퀴 뒤를 살살 닦아냅니다.
살과 살이 맞닿는 곳을 꼼꼼히, 하지만 보드랍게 닦아야 합니다.
아기의 살은 연약해서 조금만 쓸려도 빨갛게 부어오릅니다.
아기는 신생아 치고는 제법 머리숱이 많습니다.
봄나물을 무치듯이 손가락을 곧추세우고 가늘고 짧은 머리칼을 감깁니다.
비누거품이 보글보글 일어납니다.
아기의 목 아래에 팔뚝을 대고 고개를 자연스레 뒤로 젖힙니다.
머리칼에 물을 살살 부어 거품을 씻어냅니다.
아기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나를 봅니다.
아기의 눈동자가 강가의 까만 조약돌처럼 반질거립니다.
84.
스탠드만 켜둔 침실은 연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나는 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냅니다.
아기를 눕혀 기저귀를 채우고,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 분유를 탑니다.
손등에 분유 방울을 떨어뜨려 수온이 적당한지 확인합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젖병을 물립니다.
목욕을 하느라 지친 아기는 고무젖꼭지를 허겁지겁 찾아 물고는 뺨이 우묵해지도록 쭉쭉 빨아들입니다.
아기가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분유가 빠져나가고 목울대가 가녀리게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지친 아기는 고무젖꼭지를 입에 문 채 잠이 듭니다.
나는 살며시 입술 사이에서 고무젖꼭지를 빼냅니다.
아기가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화들짝 놀랍니다.
빠져나가려는 고무젖꼭지를 황급히 낚아채 뭅니다.
다시 힘차게 빱니다.
아기가 지나치게 필사적이라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습니다.
“허허, 이 양반 좀 보게나. 눈이 있으면 좀 보라고. 아직 식사 중이잖아!” 하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가녀린 본능이 살가워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젖병을 깔끔히 비운 아기는 곯아떨어집니다.
나는 스탠드의 불을 끄고 아기 옆에 몸을 눕힙니다.
잠든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봅니다.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이마와 정수리 사이의 무른 숨골이 야트막하게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습니다.
나는 스탠드의 불을 끄고 침실을 빠져나옵니다.
85.
나는 원래 꿈을 잘 꾸지 않습니다.
어쩌다 꿈을 꾸어도 아침이 되면 좀체 어떤 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군데군데 끊어지고,
강렬한 몇몇 이미지의 조각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그나마 내가 꾸었던 꿈들의 장르는 하나 같이 호러입니다.
“뭘 어쩌라고. 이건 그냥 꿈이잖아.”
나는 꿈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꿈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암시한다고 믿는 것은 심약한 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학설도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습니다.
86.
아기가 태어나고 무서운 꿈을 꾸는 횟수가 부쩍 늘어납니다.
어떤 밤엔 심지어 자다가 깨기도 합니다.
깨어난 후에도 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또렷하게 재생되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몇몇 장면들은 어릴 적 몰래 다리를 거는 친구의 장난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습적으로 떠오릅니다.
떠올라, 나를 한순간에 사로잡습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거나,
컵에 정수기의 물을 받을 때,
세면대 위에 달린 거울을 보며 양치질을 할 때,
꿈의 조각난 파편들이 어디선가 허공을 가르며 표창처럼 날아와 목덜미에 꽂힙니다.
일순 뒷목이 서늘해집니다.
아기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펄펄 끓는 기름을 뒤집어씁니다.
자동차 앞 범퍼에 부딪혀 허공을 붕 날아올랐다가 아스팔트에 사정없이 내팽개쳐집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 진저리를 칩니다.
사건은 하나같이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되어 찰나에 일어납니다.
무엇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만 같습니다.
“이건 그냥 꿈이잖아” 하고, 나를 다독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일어나버린 일의 단호함이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단호함은 정말이지 그 어떤 현실보다 생생합니다.)
나는 꿈이 내 안에 심어놓은 불안을 응시합니다.
“좋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내가 상대해주겠어.”
나는 숲속 오솔길에서 노루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무서운 꿈을 기다립니다.
또 꿈을 꾸면 재빨리 뛰어 나갈 거야,
꼭 아기를 지켜줄 거야,
아기를 따라 벼랑으로 뛰어내리고,
기름을 대신 뒤집어쓰고,
자동차를 막아설 거야,
다짐하며 잠이 듭니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이상하게도 얼어붙어버립니다.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가 없습니다.
꿈속의 아기는 가시에 찔리기라도 한 듯 그악스레 울어댑니다.
나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87.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백태클을 당해 넘어집니다.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고 경기를 그대로 진행합니다.
올드 크래퍼드의 성난 광팬들이 입에 거품을 물며 괴성을 질러댑니다.
한눈에 봐도 남성 호르몬이 과다분비되고 있는 훌리건들입니다.
나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볼륨을 재빨리 소거합니다.
길고양이의 울음 같은, 어떤 애달픈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가늠하기 위해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집 안은 심해로 가라앉는 잠수함의 선실처럼 고요합니다.
냉장고의 냉각팬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나직이 들려옵니다.
소리가 소거된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헤어드라이기’라는 별명을 가진 퍼거슨 경이 부심에게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소문들이 떠오릅니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가 엎어져 자다가 질식사했다는 소문입니다.
동전이 목에 걸려 기도를 막았다는 소문입니다.
베이비시터가 아기를 손쉽게 재우기 위해 몰래 소주를 먹여, 아기의 간이 딱딱하게 굳었다는 소문입니다.
대관절 나는 어디서 이런 소문들을 들었던 걸까요?
숨을 죽이고 온 신경을 소리에 집중합니다.
울음소립니다.
나는 퍼뜩 정신이 듭니다.
허겁지겁 침실로 갑니다.
문을 열고 아기를 향해 엉금엉금 깁니다.
아기는 눕혀놓은 자세 그대로 자고 있습니다.
두툼한 베개로 양옆을 막아 아기가 엎어지는 걸 미연에 방지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들었던 그 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내 불안이 만들어낸 환청이었을까요?
아기의 코에 뺨을 가져다 댑니다.
숨소리가 일정한 빠르기로 색색거리며 들려옵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아기의 인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댑니다.
손가락 마디에서 숨결이 가녀리게 느껴집니다.
나는 아기를 당겨 품에 안습니다.
내 얼굴을 아기의 정수리에 가져다 댑니다.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합니다.
아기의 정수리에서는 캐러멜처럼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너무 사랑하면 자꾸 무서운 꿈을 꾸게 됩니다.
나는 아기의 옆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아내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