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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May 27. 2018

12_상실의 두려움이
나를 괴롭힙니다

 너무 사랑해서 상실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88.

“싫어, 싫어.”를 적어도 스무 번은 외쳐야 하루가 저뭅니다. 


“싫어, 싫어! 안 먹는다니까.”

어머니는 자꾸만 시금치를 들이 밉니다.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돌립니다. 


“시금치를 많이 먹어야 건강해지는 거야. 뽀빠이, 몰라?”

어머니가 말합니다. 


“싫어. 시금치는 질겨.”

내가 주먹을 꽉 쥔 채 소리칩니다.


어머니가 억지로 입 안에 욱여넣은 시금치를 탁 뱉어버립니다. 

네 형만 있었어도.......”

어머니는 화를 누르다 무심결에 말해버립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건 어머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휘둥그레진 눈을 재빨리 원래 모양으로 되돌립니다. 


네 형만 있었어도....... 

나는 어머니의 말에서 생략된 빈칸에 들어갈 말을 채워 넣습니다. 

넌 안 낳았어.’ 

나는 기겁을 합니다. 

분명, 그런 뉘앙스입니다. 


하마터면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었다니. 

나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설렙니다. 

형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싶습니다. 

모였다 하면 고무줄놀이만 하는, 영양가 없는 누나들 대신 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못 살게 구는 놈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텐데. 

“니들 똑바로 봐. 이 사람이 바로 우리 형이야. 너네 다 죽었어. 형, 얘야. 얘가 특히 나를 괴롭혔어.” 

나는 상상 속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제거대상 1호를 지목합니다. 


그러다, 

아참, 

형이 있으면 나는 안 태어난 거지. 

불현듯 먹먹해집니다. 


근데 형은 왜 없는 거지? 

왜 형은 가정법 문장의 주어가 되어버린 거지?


어느 집에나 함부로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는, 금지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 형은 어디 있어?”

내 말에 어머니가 입을 다뭅니다. 


어머니의 안면근육이 눈에 띄게 딱딱해집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순한 양이 되어 시금치를 먹습니다. 

질겨도 꼭꼭 씹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에 드리운 서늘한 기운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89.

“성민이는 진짜 잘 생겼었어. 

아기인데도 인물이 훤해서 꼭 청년 같았다니까. 

동네 사람들이 서로 안아보겠다고 난리도 아니었어. 

어쩌면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타서 그렇게 됐는지도 몰라. 

돌을 못 넘겼으니까. 

아직도 그날 밤만 생각하면 오싹해. 

밤에 개가 컹컹 짖어대는데, 애가 놀랐는지 뭘 잘못 먹었는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떠는 거야.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나 당해야지. 참나.”

내가 형에 대한 이야기를 이모로부터 들은 건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90.

어미가 형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사래가 들린 형이 캑캑거립니다. 

위액과 뒤섞인 시큼한 젖을 울컥울컥 토합니다. 

아직 이가 나지 않은 형의 새빨간 잇몸에 모유 찌꺼기가 돌아다닙니다. 


어미가 형의 등을 황급히 쓸어줍니다. 

하지만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토하는 젖의 양이 점점 많아집니다. 

경기驚氣를 일으킵니다. 

발작적으로 울어 젖힙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져서는 똥을 지립니다. 


어머니는 형을 둘러업습니다. 

포대기를 단단히 동여맵니다. 

그러곤 뛰기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군을 격파했다는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마라톤 광야에서 아테네까지 단숨에 내달렸다는 그리스 병사처럼 어미는 달립니다. 


건넛마을에 있는 한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야산을 넘어야만 합니다. 

한적한 오솔길은 어둡고 음산합니다. 

젊은 어머니는 겁이 많습니다. 

어머니의 눈에 야산의 나무들이 일그러져 보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두렵지 않습니다. 

형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어머니에게 겁을 주려 잔뜩 벼르던 어둠도, 

버석거리며 순식간에 자라나 뒷덜미를 낚아채려던 나뭇가지들도 머쓱해져서는, 

선선히 길을 내줍니다. 


어머니가 달립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초승달이 어머니의 앞길에 미약하나마 달빛을 뿌려주고 있습니다. 

아직 덜 여문 과실처럼 여린 형은 어머니의 등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습니다. 


흔들리면서, 형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형이 보았을 이 세계의 마지막 모습이 삭막한 것만은 아니었기를. 

어머니의 등에서 굽이치는 별빛을 흔들리며 올려다보았기를. 


어머니는 굳게 닫힌 한의원의 대문을 두드립니다. 

인정사정없이 두드립니다. 


쾅쾅, 

쾅쾅. 


어머니의 주먹이 대문을 두드릴 때마다 빈약한 문짝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힘없이 덜컹거립니다. 

덜컹이는 소음에 어머니의 울음이 섞여듭니다. 

어머니가 목이 터져라 한의사를 부릅니다. 


쾅쾅, 

쾅쾅. 


언제쯤 어머니는 알았을까요. 

형의 죽음을 눈치 챘을까요.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어 냉혹한 생사의 현실을 못 본 체하며 애꿎은 대문만 죽어라 두들겼을까요. 


한의원에 당도했을 때, 형은 이미 축 늘어져 있습니다. 

나는 상상합니다. 

막 호흡을 멈춘 아기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온기를. 

죽은 새끼를 안고 홀로 야산을 넘어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밤길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형이 떠난 후에도 어머니는 홀로 그 상실감을 감당해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옵니다. 


잠든 아기를 보며 무서운 상상을 하던 나는 갑자기 미안해집니다.      






91.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머니가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한다고 느꼈던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불안으로 인해 나 역시 불안해졌습니다. 

어머니가 나로 인해 근심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면 좀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나의 불안에 어머니의 불안이 더해져 불안은 곱절이 되곤 했습니다. 


인생은 어쩌면 노인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로 저런 노인이 되지 않을 거야, 단언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우리는 조금씩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노인들을 닮아갑니다. 


내가 내 아기에게 그러하듯이 어머니도 나에게 그러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형을 잃었던 것처럼 나를 잃게 되면 어쩌나 불안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조금은 더 이해합니다. 

적어도 이 불안의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어머니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때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걸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92.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합니다. 

너무 사랑해서 상실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공연한 근심에 빠지고, 불길한 상상에 시달립니다. 


불안은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만을 삼키는 게 아닙니다. 

불안은 전염병입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곁에 있는 사람까지 감염됩니다.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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