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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May 24. 2018

10_갓난 아기에게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79.

카메라를 들고 잠든 아기에게 다가갑니다. 


뷰파인더로 아기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기다란 속눈썹과 오뚝한 콧날, 

동그란 눈매와 얇고 붉은 입술, 

눈을 맞추면 따라 움직이는 까만 눈동자, 

우유를 달라고 울 때면 콧잔등에 생기는 물결무늬 주름, 

작은 이파리만한 자홍빛 혀, 

치아가 나지 않은 발그스름한 잇몸이 보입니다. 


육안으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상하게도 뷰파인더를 통해 보면 보입니다. 


좋은 사진은 

공기의 질감과 

세월의 흔적, 

억제된 분노와 

아직 흘리지 않은 눈물 같은 것까지 담아냅니다. 

껍데기가 아니라 속살을 보여줍니다. 

감춰진 이면裏面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좋은 사진은 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착합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무엇보다 피사체와 단순한 교감 이상의 무언가를 나누어야 합니다. 


로버트 파카는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피사체에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은 나와 아기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나는 셔터에 올려놓은 검지에 살짝 힘을 줍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좀 뭣하지만, 

아기의 사진을 찍을 때면 여타의 피사체를 찍을 때보다 사진이 훨씬 잘 나옵니다. 


로버트 파카의 말을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카메라는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광학적 기계로 그치지 않고, 

사람과 세상과 시간을 담아내는 마법의 상자가 됩니다.      






80.

아기의 얼굴은 올망졸망합니다. 

그 얼굴을 찍다가 나는 알게 됩니다. 

화가들이 왜 천사를 아기로 그렸는지. 


화가들은 신의 얼굴을 알지 못했지만, 

인간의 어떤 얼굴이 신의 얼굴과 가장 닮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얼굴은 빛살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천 년 전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만 후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 빛살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아기는, 이곳으로 오기 이전에 머물던 곳의 영성靈性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런 신묘한 기운이 감지됩니다. 

아기 이외의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나는 이런 느낌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아기에게는 인간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있습니다. 

한때는 우리 모두에게 있었지만, 이제는 영영 유실해버린....... 


딱히 뭐라고 명확히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해본다면, 

나는 아기에게서 어떤 신적神的인 존재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인간도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존재로 생명하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흔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아닌 어떤 곳에, 

이 시간대가 아닌 어떤 시간대에, 

한 인간이 오롯이 순정무구한 존재로 생명했다는 증거로, 

이 아기가 지금 여기에, 

이런 생김생김으로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내 아기에게 지금껏 내가 지은 모든 잘못의 용서를 빌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나의 내밀한 죄들을 참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아기는 심판하고 차별하는 신처럼 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조그맣고 빨간 혀로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말해줄 것만 같습니다. 


내가 아기를 안고 있지만, 

실은 아기가 나를 안아주는 기분입니다.      






81.

 “아빠는 겁이 나. 

네가 너무 예뻐서. 

솔직히 널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겁이 나. 

우리 앞에 다가올 날들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또 겁이 나. 

혹여 이 놀라운 일상이 한순간에 사라질까봐, 두려워. 

안도현이라는 시인이 썼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말기를.’ 하고.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때때로 가슴 아프게도 

그런 일이 될 수도 있어. 

그래서 겁이 나는 거야.”

 

나는 외톨이도 모자라 겁쟁이까지 되어버립니다. 







아내와 큰 뚜루뚜뚜루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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