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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May 24. 2018

9_네가 오던 날 밤
우리도 다시 태어났어

자장가




71.

아기가 태어나면 꼭 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일입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옛날 자장가를 불러주었습니다. 

가사라곤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잘도 잔다.”가 전부입니다. 

이 문장들만 무한반복하면 됩니다. 

멜로디가 단순하기 그지없는, 

어찌 들으면 염불 같은 자장가지만, 

의식이 무의식으로 이행하는 순간에 들려오던 할머니의 음성은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나는 서툴지만, 피아노 건반을 뚱땅거려 자장가를 만듭니다. 

음악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노래를 좋아합니다. 

코드를 이어 붙여 더듬더듬 노래를 만듭니다. 

나는 악보를 그릴 줄 모릅니다. 

그래서 코드를 누르며 입에 익을 때까지 노래를 반복하면서 완성해갑니다. 

내 안에 깃든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노래를 짓게 합니다. 


노래를 만드는 일은 시를 쓰는 일과 비슷합니다. 

조용히 한 곳을 응시하다보면 무언가 살며시 다가와 나를 건드립니다. 

서서히 무르익다가, 

와르르, 

쏟아져 나옵니다. 






72.

노래에는 이상한 울림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멜로디는 흩어지지 않고 그 노래가 공명하던 옛날로 한 사람을 데려갑니다. 

노래를 부르던 옛날의 공기가 마법처럼 되살아나 한 사람을 에워쌉니다. 

세월의 물살에 휩쓸려갔다고 생각했던 의미들이 돌아와 봄밤의 흰 꽃잎처럼 허공을 가득 채우며 날립니다. 

노래가 끝나면 마법도 사라지지만, 

노래는 하나의 추억, 혹은 하나의 감정을 불러들이는 주술이 됩니다. 

어느 고요하고 쓸쓸한 귀갓길에 남몰래 입가를 맴도는 노래를 부르다가 

물색없이 밀려드는, 

이제는 더 이상 여기에 없는 것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73.

아무도 없는 오후, 

남몰래 꽤나 불러, 

어느덧 익숙해진 자장가를 처음으로 아기에게 불러줍니다. 


제목은 ‘아가에게’입니다.      


_아가, 놀라운 축복 

우릴 위해 어디에서 온 거니.     


아가, 네가 오던 날 밤 

우리도 다시 태어났어.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행복도 

우리 함께 나누는 거야.


이 넓은 세상에 

이 많은 사람 중에 

너와 내가 만난 거야.     


아가, 한 그루 나무처럼 

하늘 향해 맘껏 자라나렴.     


아가, 한 마리 새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으렴.     


내 사랑하는 아가_






74.

아기의 행복한 잠을 위해 자장가를 부르지만, 

정작 행복해지는 것은 아비입니다. 

행복은 위대한 업적의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에 오르면, 

지금보다 부유해지면, 

원하던 목표를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 믿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성취감은 뜻밖에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붉은 꽃은 십 일이 채 지나지 않아 지고, 

평범하고 고요한 나날들이 다시 시작됩니다. 


동양철학에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항상심恒常心’이라는 게 있습니다. 

항상심이란, 

기쁜 일이 생기든, 

슬픈 일이 생기든, 

마음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입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쁜 대로,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픈 대로, 

마음의 결을 치우침 없이 유지하고자 노력하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이 대관절 어디에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행복은 언제나 일상의 자잘한 부스러기 속에 깃들어 있다고


남들이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하루하루의 반복 속에 있습니다. 

알고 보면, 행복은 늘 소소小小합니다. 

주책없이 눈물이 납니다. 

나는 아기를 봅니다. 


아내와 아기는, 

이 행복한 순간은, 

나를 울립니다. 


시간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우리를 또 어딘가로 데려가겠지만, 

지금은,

지금 이 순간을 누리면 됩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비가 되었다고 나는 느낍니다. 

나는 아내보다 한 박자 늦게 아비가 됩니다. 


나는 품에 안은 아기에게 속삭입니다. 

고마워. 우리한테 와줘서.” 


아기는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습니다. 






75. 

내가 운영하는 커피하우스의 단골손님 중에 작곡을 전공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손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나는 자장가 이야기를 합니다. 

입으로 만든 노래라 악보는 없다고 했더니, 친히 악보를 그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손님이 드문 시간에 테라스로 나가 손님 앞에서 자장가를 부릅니다. 


손님은 아이폰으로 녹음을 하더니, Garage Band의 피아노를 뚱땅거립니다. 

단골손님은 노래를 듣자마자 몇 분만에 쓱쓱 악보를 그립니다. 

마법처럼, 내 자장가가 오선지의 음표로 그려져 있습니다. 

내가 이걸 우리 집 가보로 물려주겠다고 했더니 손님이 웃습니다. 






76.

이제 뚜루뚜뚜루뚜는 둘 다 아비의 자장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차분하게 완창을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닐 만큼 난리를 치고 멋대로 개사하기 일쑵니다. 


참고로 한 마디 하자면, 남자아이들을 웃게 하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똥", "코딱지", "방귀", "오줌"하고만 말해도 뚜루뚜뚜루뚜는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댑니다. 

그런 아이들이 노래 한 곡을 얌전히 완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개사된 가사에 똥, 코딱지, 방귀, 오줌, 돼지가 수시로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래에 담긴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우리가 나눈 마음의 증표로 공명합니다. 






77.

피아노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집니다. 

나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피아노의 선율에 귀를 기울입니다. 

거실에 놓인 피아노에 앉아 큰 뚜루뚜가 아비의 자장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가로 웃음이 번집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래서 아이들도 나와 아버지처럼 아비가 된다면, 

나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손주들에게 또 이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습니다. 


사랑이 노래가 되어 전해진다면, 

그 또한 근사할 것입니다. 

내 자장가가 멀리멀리 퍼져나가길 빕니다.      






78.

이 세상에는 정말이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르와 국적을 떠나 노래는 심금을 울립니다. 

음악이야말로 만국공통어입니다. 

돌이켜보면 어디에나 음악이 있습니다. 

결혼식에도, 장례식에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음악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아기가 청소년기에 도달하기 전에 형성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자질들이 있습니다. 

아비가 그런 것을 미리 그려놓는다고, 

그런 것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아비는 그런 것을 그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삼각형입니다. 

각각의 꼭짓점에 언어와, 수학, 그리고 스포츠와 예술이 놓여 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할 때면 나는 기꺼이 선곡을 맡습니다. 

이제 열 살이 된 큰 뚜루뚜가 그 역할을 호시탐탐 탐냅니다. 

작은 뚜루뚜도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고릅니다. 


음악은 어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지상의 한 가정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어쩐지 백마법사와 흑마법사가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지만, 

이 말은 100퍼센트 사실입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는 어떤 우울도 그 집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없습니다

우울이 한 가정을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음악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음악을 즐기는 삶은, 

그리고 악기를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과 적잖은 면에서 다릅니다. 


멜로디에 마음을 실어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생의 굽이굽이에서 

음악은 위로와 치유의 수단이 동시에 되어줄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오래된 노래들을 고릅니다. 

신해철과 비틀스와 히사이시 조를 거쳐, 브람스와 김광민과 브루노 마스에 이르기까지. 

함께 들었던 음악이 우리가 품게 될 정서에 어떤 공통점을 심어주리라 기대하면서. 

사랑과 이해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리라 희망하면서. 


노래들이 드라마의 백그라운드 뮤직처럼 흘러나옵니다. 

먼 훗날 이 노래들이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의 공통분모가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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