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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May 23. 2018

8_아버지는 그저 낯선 남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있었다면





56.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아내와 아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토요일 저녁입니다.

러시아워의 올림픽대로는 차량으로 혼잡합니다.

어둠이 내리는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힙니다.

한 꺼풀씩 어둠이 짙어집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앞 차량의 후미등이 유난히 빨갛게 빛을 발합니다.

아내가 아기를 낳은 후,

내내 내 안에서 찰랑이던 슬픔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57.

아버지는 대양을 누비는 마도로스였습니다.

해운회사에 소속되어 커다란 무역선을 책임지셨습니다.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년 내내 대양을 떠돌다가 집으로 오셔서 두세 달 머물다가 또 훌쩍 떠나곤 했습니다.


집으로 올 때면 식구들에게 줄 선물로 가득 차 있던 아버지의 여행가방이 떠오릅니다.

철없던 아들은 아버지보다 선물을 더 기다렸습니다.

일제 자동 연필깎기, 독일제 카세트 플레이어, 캥거루 가죽 필통......

그 시절 아버지는 아직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낯선 남자였습니다.      






58.

어머니와 함께 갔던 김포공항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공항청사로 들어섭니다.

청사 안의 공기는 기묘합니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헤어지고 만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뜨개질의 털실처럼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사이로 어미와 내가 끼어듭니다.


나는 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검정 알림판을 올려다봅니다.

차라락,

차라락.

아날로그 방식의 알림판에 새겨진 이국의 도시 이름들이

도박사의 손에서 섞이는 트럼프처럼 빠르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국의 도시 이름들을 올려다보며 나는 이상하게 설렙니다.


높은 천장을 훑으며 스피커의 안내방송이 들려옵니다.

에코가 알맞게 가미된 여자의 음성이 낭랑합니다.

여자는 비행기의 출발과 도착 시간을 안내합니다.


입출국을 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자동문이 열렸다 닫혔다 할 때마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립니다.

그건 아버지를 태운 비행기가 이미 활주로에 착륙했다는 뜻입니다.

어머니의 시선이 카트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빠르게 훑습니다.


나는 다리가 아픕니다.

게다가 버스를 너무 오래 타고 와서 속도 울렁거립니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택시를 타지 않습니다.


엄마, 엄마.”

나는 어머니를 부릅니다.


어머니는 무심합니다.

자동문 앞에서 어머니는 여력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녀는 오직 한 사내의 여자입니다.






59.

이윽고 자동문이 열립니다.

마지막이 아니면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는 조용필처럼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머니가 그제야 나를 내려다봅니다.


“뭐해? 아빠잖아.”

나를 채근합니다.


“빨리 가. 가서 안아드려.”


어머니가 한 손으로 잽싸게 등을 떠밉니다.

내 발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재촉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와 내가 팽팽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가차 없이 나를 번쩍 들어 올립니다.

아버지의 목덜미에서 희미하게 스킨향이 맡아집니다.

매캐한 담배냄새도 납니다.

땀 냄새도 섞여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열대의 어느 더운 나라에서 온 것일까요.


나는 그 냄새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손으로 코를 틀어쥐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수염이 다가옵니다.

질끈,

나는 눈을 감아버립니다.

수염이 내 뺨을 문지릅니다.

까끌까끌하고 따갑습니다.

나는 거의 울 지경이 되어버립니다.


아버지는 나를 내려놓고 어머니를 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안으려 합니다.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칩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다급히 몸을 뒤로 내뺍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집니다.     



 




60.

김포공항은 이제 예전의 그 김포공항이 아닙니다.

인천 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동아시아 국가로 향하는 몇 개 노선만을 운영하는

소규모 공항으로 쇠락했습니다.

옛 영광은 아스라이 사라지고 어쩐지 몰락한 왕조의 궁궐 같은 쓸쓸한 기운이 감돕니다.


이렇게 작았었나.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오다가 나는 문득 공항청사의 한 복판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남겨두고 저만치 멀어집니다.


나는 입국하던 사람들이 나서던 자동문이 있던 자리를 돌아봅니다.

젊은 어머니와 내가 거기에 있습니다.

거기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열대의 어느 나라에서 막 당도한,

그날의 아버지만큼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시절 나만 했던 아이가 생겼습니다.


‘김포’라는 지명은 나에겐 공항과 이음동의어입니다.

누군가 “김포” 하고 말하면 ‘공항’이 저절로 뒤따라 떠오릅니다.      


나에게 김포는,

언제나,

그 옛날의 김포공항입니다.


나에게 김포공항은,

언제나,

달려가 아버지를 힘껏 안아주지 못한,

그 옛날의 김포공항입니다.      






61.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왜 아빠는 배를 탔어?”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가난 때문이지.”


아버지는 꼬박 20년도 넘게 대양을 누볐습니다.  

20년이라니.

한 생명이 태어나 건장한 청년이 될 만큼 긴 시간입니다.

나는 그 시간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가난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나는 가난을 모릅니다.

덕분에 배고픔도 모르고,

덕분에 학비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마움보다 짜증이 앞장서서 밀려옵니다.


왜 좀 가난하면 어때서? 하는 심정이 되어버립니다.

"몰라, 몰라. 나 떠나기 싫어. 이제 더 이상 배 안 탈래."

앞뒤 가리지 않고 떼를 쓰는 아버지였다면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함께였다면 어땠을까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가정假定 같은 것은 부질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62.

오늘은 아버지가 떠나는 날입니다.

집 안은 고요합니다.

어떤 숨죽임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공항을 가겠다고 나서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류합니다.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올 때와는 달리, 떠나는 아버지의 짐은 단출합니다.

단출하기, 그지없습니다.

손에 들린 007 가방이 전부입니다.

4개의 숫자를 맞추면

찰칵, 소리가 나며 열리는 가방.


아버지가 집을 나서기 직전 현관에서 나를 봅니다.

아버지는 과묵합니다.

마땅히 작별인사라고 할 것도 없는 인사를 나눕니다.

아버지의 말은 밍밍하고 싱겁습니다.

진부하고 뻔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뭐, 그렇고 그런 말들이 무미건조하게 오갑니다.


누나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없습니다.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말합니다.

“갈게.”


아버지가 집을 나서는 것과 동시에 어머니는 휑하니 방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슬픔을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63.

나는 창가에 서서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몰래 훔쳐봅니다.

어머니가 미리 불러둔 콜택시가 집 앞에 멈춰 있습니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아버지는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이브 몽땅이란 남자를 닮았습니다.

콜택시에 올라타기 직전, 아버지가 몸을 돌려 집을 바라봅니다.


나는 혹여 눈이 마주칠까 봐 재빨리 몸을 숨깁니다.

아버지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됩니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잠시 후 가슴을 졸이던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듭니다.


아버지를 태운 콜택시가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릉부릉.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미안합니다.

어떤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저 낯선 남자가 집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어쩐지 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뭐라고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강력한 어떤 기운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어린 꼬마였던 나는,

아버지를 아직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택시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64.

어린 시절, 초등학교의 선생님은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가 더 좋은지 손을 들게 했습니다.

어떤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참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나는 성별에 막 민감해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아버지에, 여자아이들은 어머니에 일제히 손을 듭니다.

나는 어머니 쪽에 손을 든 유일한 남자아이입니다.


아버지가 바다로 떠나면 집 안에 남자라곤 나 하나뿐이었습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셋.

돌아보면 아버지가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끼리만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65.

철이 들고 아버지가 내 안에 들어오면서 나는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가늠하게 됩니다.

그 시절의 아버지보다 이제 나이가 많은 내가 아버지를 올려다봅니다.

둘째 누나가 태어나기 전부터 배를 타셨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배를 타셨습니다.

햇수로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아버지는 대양을 떠돌았습니다.

나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치열함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 번번이 함께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비 없는 집을 홀로 지키며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떤 면에서는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66.

아버지와 나는 서로 사랑했지만,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적잖은 면에서 달랐습니다.

아버지가 살아낸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엄연히 같은 곳이었지만,

반드시 같은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사회는 너무 빨리 변했고, 우리는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버거웠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차분히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번번이 어긋났고, 서로의 가슴에 가닿지 못했습니다.

모자란 아들은 아버지의 자랑이 되지 못해 늘 속이 상했습니다.


햇볕을 쬐지 못해 시들어가는 식물처럼 말라가며 내 안의 목소리로 애타게 아버지를 불렀지만,

우리는 서툴게 서로의 마음을 먼발치에서 헤아릴 뿐,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나누었던 적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67.

아버지가 딱 한 번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바다로 떠나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어느 여름날의 저녁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동네 치킨집에 갔습니다.


중학생이던 나는 아버지와 함께 치킨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벽에 달린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맥주회사에서 사은품으로 준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비키니만 아슬아슬하게 걸친 여자 모델들의 사진이 실린 달력이었습니다.

나는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이고 치킨을 먹었고,

아버지는 치킨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맥주를 마셨습니다.


“원래 배가 출항을 하기 전에 목적지를 가르쳐주거든.

근데 이상하게 일단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일단 하라는 대로 했지.

그제야 무선으로 연락이 왔는데, 한참 전쟁 중인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해협으로 들어가야 하더구나.”


당시만 해도 호메이니를 비롯한 아랍의 지도자들이 9시 뉴스에 거의 매일 출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이야기의 전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선장이랑, 아빠랑, 일등항해사.

이렇게 셋이 선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모여서 회의를 했어.

돌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거든.

게다가 유조선이어서 위험천만했지.

포탄이 날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으니까.

회의 끝에 우리는 배의 전등이란 전등은 모두 소등하고 목적지로 가기로 했단다.

해협 깊숙이 들어가는데, 포성砲聲이 멀리서 들려왔어.”

나는 꼴깍 침을 삼킵니다.


미동도 없이 아버지를 봅니다.

“그때 네 생각을 했어.

우리 이을이 생각.

우리 가족 생각.”


수줍은 아버지는 낯 뜨거운 고백을 한 탓에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나는 먹던 치킨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먹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맥주잔을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나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오는 길에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68.

며칠 뒤 아버지는 다시 바다로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고백이 어디를 가든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포성과, 밤바다와, 그리고 외로움을 생각했습니다.


유조선의 갑판 위에서 아라비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버지가 내 안에서 저절로 그려졌습니다.

별들이 쏟아질 듯이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반짝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문장들이 내 안에서 달그락거립니다. 

나는 남몰래 그 당시에 내가 쓰던 시詩 공책에 그 달그락거림을 받아 적었습니다.

적고 보니, 한 편의 시가 씌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시에 ‘아라비아의 별’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버지는 단 한 번의 고백으로 내게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고백이라도 했는데,

나는 끝끝내 아버지에게 내가 쓴 시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아버지만큼이나 수줍은 아이였습니다.      






69.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섬세했던, 그 누구보다 성실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화가 날 만큼 성실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아버지가 못 견디게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있었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정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께 여쭙고 싶은 것들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내 유년시절처럼 아버지는 곁에 없습니다.

엄마와 누나들이 있지만 나는 요즘도 남몰래 이따금 외롭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합니다.


아버지가 뚜루뚜뚜루뚜를 보았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자애롭고 따뜻한 외할아버지가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지만,

그래도 가슴에 뚫린 5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을 메울 길이 없습니다.


친할아버지가 손주를 한 번도 볼 수 없다니.

손주가 친할아버지를 한 번도 볼 수 없다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나는 아기들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다짐합니다.

친할아버지가 있어서, 네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 봐야 막연한 이름이겠지만,

그저 인화지의 형상으로만 만나는 할아버지겠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독립을 할 때까지 어디로도 가지 않고 함께 있겠다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어야 가족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면 유리창이 뿌옇게 번질 만큼 나는 웁니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아들을 돌봅니다.      






70.

아버지의 속은 얼마나 파르스름했을까요.

새드 블루.


푸른 바다를 보며 얼마나 집에 가고 싶었을까요.

론리 블루.


딸들과 아들이,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딥 블루.      






뚜루뚜뚜루뚜의 친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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