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아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52.
막달에 접어들 무렵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마지막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내가 운전을 했고, 아내는 보조석에 앉아 있습니다.
볕이 유난히 따스한 봄날입니다.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춥니다.
아내가 나를 봅니다.
“오빠는 아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아내가 내내 아껴둔 말을 꺼냅니다.
모르긴 해도 아내는 여러 상상을 한 끝에 이 질문을 떠올린 게 틀림없습니다.
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브람스 연주가 흘러나오는 카오디오의 볼륨을 줄이고 아내를 봅니다.
아내도 나처럼, 아기와 연관된 미래의 일들을 자신도 모르게 상상하는 모양입니다.
아내와 나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어쩌면 아내가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해올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한 대답이 있습니다.
“근성이 있었으면 좋겠어.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면 좋겠어.
자신 안에서 생겨난 걸 믿으며 나아가는 사람이면 좋겠어.
남들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이러나저러나 한 사람은 한 사람이니까,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잖아.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품었으면 좋겠고,
멋대로였으면 좋겠어........”
내 대답은 나도 모르게 자꾸 길어집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진땀이 납니다.
정면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봄볕이 아내의 불룩한 배 위에 평형사변형을 그려놓습니다.
그 평형사변형을 보다가,
나는 얼른 입을 다뭅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문장이면 족합니다.
내 말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을 벌리면 벌릴수록 손햅니다.
신호등의 불이 바뀌고 차가 출발합니다.
“......하여튼 그래.”
나는 재빨리 얼버무립니다.
이제, 아내 차롑니다.
“당신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내 말을 듣던 아내가 나를 봅니다.
“잘 웃는 아이였으면 좋겠어.”
아내의 말이 나를 후려칩니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아이가 웃는데, 대관절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어딘지 모르게 아내가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아내는 이미 어미가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관점보다 아이의 관점에서 말합니다.
정말이지, 조금이라도 빨리 입을 다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53.
아내의 말은 흩어지지 않고 내 맘에 남았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부끄럽게 한 그 말을 잊지 않고 간직했습니다.
그 말은 내 마음 맨 앞에 놓여 있습니다.
아이를 바라볼 때면 아내의 소원은 내 첫 번째 리트머스 종이가 됩니다.
나는 제일 먼저 뚜루뚜뚜루뚜가 잘 웃고 있는지 살핍니다.
54.
“아빠 말이 그렇게 우스워!”
한심한 이야기지만,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종종 아이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훈육을 한답시고 막 언성을 높이는 내 앞에서
뚜루뚜뚜루뚜는 슬슬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흘립니다.
녀석들은 공동작전을 펼칩니다.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은근슬쩍 내 허리를 감쌉니다.
나는 웃지 말라고 인상을 씁니다.
하지만 뚜루뚜뚜루뚜는 멈추지 않습니다.
낄낄,
깔깔,
큭큭,
킥킥.
뚜루뚜뚜루뚜가 웃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에 전염되어버립니다.
내 입에서 풉,
웃음이 터져 나오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뚜루뚜뚜루뚜는 내게 달려들어 나를 안아버립니다.
상황은 일거에 역전됩니다.
아이들을 꾸짖던 중대사는 홀연히 증발하고 웃음이 서로의 마음을 풀어버립니다.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55.
웃음은 복을 불러들이는 주술입니다.
웃어야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웃고 있다면,
괜찮습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괜찮은 겁니다.
무엇보다 나부터 소리 내어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깔깔거리려고 합니다.
웃지 않는다면,
아무리 최고의 것을 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그것은 아직 최고의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