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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Jun 12. 2018

19_아기는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흰 종이입니다.

지금은 소중한 도입부입니다.

120.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_<빈집> 기형도 作     


기형도 시인이 남긴 단 한 권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은 젊은 날 나의 애독서愛讀書였습니다. 

그 시집에는 주옥같은 시들이 있습니다. 

그 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가 단 한 권의 시집으로 불멸의 시인이 되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중에서도 <빈집>은 손에 꼽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십니다. 


시인은 요절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이 시를 어느 문예지에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 시의 작중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빈집에 가두고 떠납니다. 

떠나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결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이별은 더욱 아프고 사랑은 간절합니다. 






121.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빈집>의 한 행行이 젊은 날의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다른 행들은 낭송하는 것과 동시에 느껴졌지만, 

이 행만은 곧바로 감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흰 종이들이 왜 공포를 기다린다는 거지?

내 시선은 오랫동안 그 행에 머물렀습니다. 


흰 종이는 대관절 뭐가 무서운 걸까요? 

무서우면 무서운 거지, 공포를 기다린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어째서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공포를 기다리는 걸까요?


내 머릿속에서 흰 종이를 앞에 두고 앉은 시인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시인은 이제 곧 무언가를 흰 종이에 쓰려고 하는 찰나입니다. 

시간이 꽤나 흐르고서야 나는 그 행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흰 종이의 운명은 

더 이상 흰 종이로 머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흰 종이에는 곧 첫 문장이 씌어져야 합니다. 

일단 무언가 씌어지면 지울 수가 없습니다. 


"뭐야, 잘못 썼잖아" 하고 기를 쓰고 지운다고 해도, 

그래서 누구도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깨끗이 지워낸다고 해도,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았던, 

맨 처음의 흰 종이는 아닙니다. 


흰 종이는, 

딱 한 번 

흰 종이입니다.      


그리하여 흰 종이는 공포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122.

작가나 화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흰 종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흰 종이 위에 자신만의 생을 써나가는 중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인생도, 글쓰기도 따지고 보면 선택의 연속입니다.

한 문장을 쓰고, 또 한 문장을 선택합니다. 

한 시기를 살고, 또 한 시기를 선택합니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선택에, 

혹은 그 선택하지 않음에, 

나 자신이라고 말할 만한 것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선택한 것들의 총합입니다. 


그 선택들의 총합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러니까 한 사람의 생이 

시간 위에 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기는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흰 종이입니다.






123.

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또 하나의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이야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삶과 닮아 있습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체호프는 “이야기의 도입부에 총이 나왔다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총이 발사되지 않는다면 굳이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헤밍웨이는 가장 완벽한 구성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지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지워서 글의 몸피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그게 효율적입니다. 


소설의 작법을 이야기할 때에 이 문장은 자주 회자됩니다.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 전체를 바라볼 때, 이 문장은 도입부가 어떤 부분인지 잘 보여줍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도입부는 조금 지루한 면이 있습니다. 

도입부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들이 소개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이 수면 아래에서 생성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입부를 꼼꼼히 읽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도입부에 드러난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124.

아기의 인생은 도입부 중에서도 거의 맨 앞쪽에 속합니다. 

아기는 도입부의 도입부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도입부에서 아기에게 다가온 것들은 아기에게 흔적을 남깁니다. 

그것들은 아기의 뇌리에 각인됩니다. 

거위의 각인효과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도입부의 여러 장면들이 아기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습니다. 

도입부의 어떤 장면이, 

혹은 어떤 사소한 감정이 점점 자라나, 

아기의 인생을 좌우할 무언가가 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도입부의 장치들은 베일에 가려진 채 서서히, 하지만 끈질기게 생겨납니다. 


시간이 흘러 도입부가 끝나고 이야기는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수가 많아지고, 사건이 터지고, 갈등이 본격화됩니다. 

단순했던 사건과 관계는 점점 복잡해지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도입부 같은 것은 이미 까마득히 잊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다다르면 한 사람은 문득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한 사람은 도입부에서 만났던 무언가를 떠올립니다. 

분명 보잘것 없이 스쳐 지나간 어떤 것이 점점 자라나 

커다란 그림자를 머리 위에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뭐지? 

누가 나를 자꾸 뒤쫓아오는 거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도입부의 총이 불을 내뿜습니다. 


도입부에 어둠의 씨앗이 심겨졌다고 해서 그것이 어둠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반대로, 도입부에 빛의 씨앗이 심겨졌다고 그것이 빛으로 남아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인생은 어둠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빛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의 도입부에서 최초로 마주친 것이 빛이라면, 

그 사람은 그 최초의 빛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 빛이 한 사람을 인도해줄 등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25.

큰 뚜루뚜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함께 주말을 보내기 위해 나들이를 간 친구네 아내가 가벼운 푸념을 하는 걸 보았습니다. 

몇 달 전 아이의 안전을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카시트를 샀는데, 

아이가 좀처럼 앉지 않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남몰래 살짝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큰 뚜루뚜는 한 번도 카시트에 앉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큰 뚜루뚜와 친구네 아이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몇 마디 사족을 붙입니다. 

친구네 아이를 탓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 점에서만은 결백합니다. 

다만 부모라는 작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식 위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점을 부디 헤아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큰 뚜루뚜를 카시트에 앉히다가 불현듯 그 연유에 대해 짚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내가 큰 뚜루뚜와 산후조리원에 머물던 때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카시트를 선물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아기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산후조리원으로 가기 전에 카시트를 차에 창착했습니다. 

그러니까, 큰 뚜루뚜는 아비가 운전하는 차를 처음 타던 그 순간부터 카시트에 앉았던 겁니다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아기를 카시트에 앉히며 아내와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에 반해 친구네 아이는 한동안 엄마와 함께 뒷좌석에 앉다가 

“이제 여기가 네 자리야, 여기 앉아.” 하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아이에게는 엄마와 함께 뒷좌석에 앉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시트가 어쩐지 자기 자리처럼 여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마의 옆자리에 앉고만 싶었던 것입니다. 


가장 먼저 인식되는 최초의 것들이 어쩌면 아이와 부모의 소통에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중하게 최초의 것들이 선별된다면 부모도 아이도 한결 수월할 수 있습니다. 


일체 수정을 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선택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도 매번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습관을 맨 처음부터 심어주려고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나날이 시작되기 전에 

무언가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한 번쯤 아이의 입장에서 고심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한 번의 고민이 수정의 번거로움을 줄이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26.

똑딱,

똑딱.     


아기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흰 종이에 첫 문장이 씌어지고,

첫 단락이 씌어지고,

첫 페이지가 씌어집니다. 


나는 도입부를 조금도 허투루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아이들과 뒹굴며 보내리라 다짐합니다.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관계는 좀 더 친밀하게 형성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시간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이의 첫 페이지에 씌어지기를 빕니다.  


지금은, 소중한 도입부입니다.      



김이을 작가의 다른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my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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