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을 자주 가는 까닭은

경기 회복이 기다려져

by evan shim

이번 가을은 조금 달리 느껴져



가을이 왔다 이번 가을은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특별히 가을을 좋아하지 않는데 가을이 이전 가을과 다르다는 여겼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동안 뜸했던 논산 창고를 최근에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방문횟수와 회사 수입은 직접 비례관계이다. 코로나로 그동안 논산 창고를 자주 가지 못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논산에 창고를 건설해 놓은 데는 곡절이 있다. 12년 전 회사 물건을 보관할 창고가 없었는데 사업을 하는 친구가 논산에 당장 쓸모없는 창고를 쓰라고 하여 고맙다 하며 창고를 빌려서 썼다. 창고가 생기니 이에 비례해서 쌓아 놓을 물건도 생겼다. 한 2년 잘 사용을 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부도가 났고 사업은 폐쇄되었다. 나는 창고를 비워주어야 했다. 임시방편으로 가까운 곳에 농가 창고를 빌려 거기서도 한 2년 임차를 하였다. 그런데 건물 소유주가 나에게 건물을 구입하라고 했다. 나도 필요하니 그러자고 했고 드디어 법무사 사무실로 계약을 하러 가기에 이르렀다.


이동중에 이 분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건물을 팔려한다고 말을 하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건물을 왜 파느냐고 반대를 하였다. 전화를 마친 건물주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건물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법무사 사무실을 가던 차를 돌려서 다시 와야만 했다. 법무사 사무실에 계약을 준비하던 사무장에게 내용을 알려주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졸지에 창고 운영 계획이 다 중단되어 버렸다.


후일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분 아들의 판단은 나에게 오히려 큰 행운을 주었다. 구매를 포기한 것이 너무나 잘 되었던 것이다. 그때 빌렸던 창고는 논 한가운데 위치하여 진입도로도 없었고 그 창고를 샀더라면 두고두고 고생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는 새옹지마라 하나보다.


창고 풀깍기 전



그 무렵 창고문제를 고민하던 나는 근처에 있는 밭을 구입하여 창고를 올렸다. 처음 해보는 건물 짓는데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땅 구입비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땅을 돋우고 옹벽을 쌓는 비용은 처음 생각지도 못하고 나간 비용이다. 건물 골조는 H빔을 썼고 보기에는 그럴듯한 건물이 지어졌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식으로 지은 첫 건물이 지어졌다. 창고가 지어지고 얼마 안 있어 주변 진입도로도 넓게 확장되어 대형 화물차 진입이 쉬었다. 내부에는 숙소를 만들어 놓았고 TV, 인터넷, 주방, 수도시설과 에어컨 등을 다 갖추어 놓았다. 필요하면 거기서 숙박을 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밤에 조금 무서운 느낌도 있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그리고 건물 옥상에는 40KW 태양광 발전시설을 해 놓았다. 당연히 장기간에 걸쳐 발전 수익이 조금은 나온다.


강한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오면 태양광 패널이 날아갈까 항상 걱정이 된다. 꽤 큰 내부 공간이 있어서 여기에 항공기와 관련된 온갖 물품을 가져다 적재해 놓았다. 세스나 항공기도 왔고 B737 엔진과 여러 가지 항공기 엔진도 들여다 놓아 근래에는 창고가 조금 부족함을 느낄 정도까지 되었다. 처음 근처에 영농을 하던 주위분들이 도대체 무엇하는 창고인가 의아해하면 내부를 구경시켜 주고 차 한잔도 대접했다. 동네 마을 잔치가 있을 때는 항상 축하 기금을 냈다. 바로 인접한 밭을 지으시는 부인께서는 거기서 소출되는 농산물 (땅콩, 무, 감 등)을 가끔 주기도 하여 고맙게 여겼다.


약 500 평 규모에 회사에서 사용하는 자재와 물품을 보관하고 또한 제법 기계공작 설비 (선반, 밀링, 용접, 컴프레서 등)를 해 놓은 소형 공장이다. 근래 코로나19 때문에 사업 경기가 얼어붙어 창고에 갈 이유가 없었다. 가끔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그래도 궁금해서 가 보는데 논산 창고 부지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예전 같으면 예초기를 돌려서 풀을 깎는 것이 의례적인 일이었다. 경기 부진으로 논산 창고에 자주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풀을 깎을 이유도 딱이 없었다.


휘발유 예초기를 수년째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돌려도 엔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다른 기종으로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논산 시내에 있는 예초기 판매점을 찾았다. 거기서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예초기를 바로 구입했다. 언제나 성질이 급해 한번 생각하면 바로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마당에 난 풀을 깎는 시연을 했다. 대 만족이다. 우선 휘발유 연료탱크를 어깨에 매야 하는 기존 예초기보다 무게가 절반도 안 된다. 그리고 시동도 곧장 걸리고 엔진 소움도 조금 적고 사용이 편해졌다. 판매점 주인아저씨가 요즘 부탄용 예초기가 잘 나간다 한 것이 맞는구나 생각했다.


창고 이발 후


전번 주말에 함께 일하는 기술자와 함께 이틀간 일을 하러 갔다. 이사장 이란 분인데 거의 15년 정도 필요할 때 기계 설비 등을 전문으로 도움을 주는 분이다. 원래 항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분인데 나와 오래 하다 보니 항공과 관련된 모든 일을 척척박사 식으로 잘 해내는 전문가가 되었다. 국내 대학의 항공실습실은 초기에 이 분이 거의 다 만들어서 그걸로 업계 표준이 되었다.




조금씩 나의 경기가 회복되려는지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경기 부진은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기 회복이 조금씩 되는 거 같다. 창고에 숙소가 있는데 거기서 잠을 자 보지 않은 것이 1년 이상이 된다. 오랜만에 하룻밤을 자고 와야 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내부 정리와 방 청소부터 깨끗이 해야 할 것 같다. 집은 사람이 기거해야 집 꼴이 되는데 오래 사용 않으면 폐허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을 시골에서 많이 봐 왔다.


근래 들어서 바쁜 일은 해외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동안 경기 부진으로 인해서 해외 물건 구입을 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제 서서히 다른 상황이 도래한 거 같다. 불안한 생각이 한때 들기도 했다. 이러다가 내가 하는 항공분야 사업이 소멸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항공 관련 물품 제고를 최소화하자고 마음먹다 보니 해외거래가 거의 없었다. 나와 거래하는 해외 파트너들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가끔 문자로 근황을 묻는데 다들 어렵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한때 공급 수요 네트워크가 없어질 단계까지 왔었다. 이제 기지개를 켤 단계인지 조금 조심스레 기다려 본다. 전번 주 은행에서 해외 구매대전을 송금했는데 또 오늘도 해야 할 것 같다. 일이 없다가 생기니까 오래간 만에 바쁜 것 같다. 근래에는 송금도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집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이 되었다. 대부분의 해외 거래처는 이런 편리한 거래대금 진행 절차를 시스템으로 구축해 놓은 곳이 많았다. Paypal 송금도 과거보다 더 편리하게 진화되어 쓰기에 편리했다. 한두 번 해보니 비싼 은행 수수료보다 저렴하고 편리함을 느꼈다. 이제 해외거래도 국내 거래와 별 차별 없는 시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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