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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Sep 19. 2024

텔렉스(tlx) 치던 방식으로 오늘 할 일을 적는다

(암호문이 아니다)

 

Soo sin rtn

ofc itm sply ctc

eng tlk prp

hngbag rply

HY rfnd

cyc mbr ntc

- - - -


나는 사무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그날 할 일을 메모지에 간단히 기록한다. 습관은 오래간다. 오랫동안 이리 써왔다. 그리고 하나씩 완료되면 지우고 있다. 저녁에  지우면 기분이 만족스러워진다. 이리 하면 빠트림 없이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무슨 암호 같지 않은가. 사실 암호 수준이다. 나만 알면 되지 하고  것이다. 우연히 익혀진 방식이다. 초기 텔렉스를 치면서 써온 텔렉스 약어 방식으로 그 날의  일을 적어둔 것이다. 메모지에 하루 일을 그리 적으면 다른 사람이 봐도 대부분 이해를 못 한다. 크게 대외비로  비밀은 없으나 어느 정도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진다


텔렉스를 보낼 때는 기본 규정이 있다. 어떤 단어라도 영문 자모 3-4개로 줄여야 한다. 이해가 안 가는 경우는 자모 하나를  추가할 수는 있다. 알파벳 자모 중 모음은 초소화하고 자모를 주로 써야 한다.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통신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텔렉스 기술은  시대의 산물이다

텔렉스 종이는 두루마리 롤지를 사용한다. 타자처럼 검은색 리본을 주기적으로 갈아 끼워야 했다. 국제 간 교신이므로 다음날 아침에 보면 수 미터에 이르는 롤이 뒤엉켜 있기도 했다. 또는 잉크가 닳아서 흐릿하여 해독이 불가한 문서도 있었다. 그러면 다시 발신원 지역에 텔렉스를 보내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재발신은 기록 저장이 안 될 경우는   문장을 다시 쳐야 하니 이만저만 문제가 아니었다.  역할은 주로 부서의 하급직원이 맡아서 했다. 거기에 타전하면 들리는 도트(dot) 소리는 귀가 얼얼할 정도로  소리가 났다. 전화가  안 들릴 정도의 소리이다. 한 자 한 자씩 타공 하여 도트를 치니 오래 걸리기도 했다.


컴퓨터 인터넷이 나오기 이전 해외와 교신하는 통신문은 거의 대부분 영문 자모를 통해 텔렉스로 전달되었다. 한글은 보낼 수가 없었다.  후에 물론 팩시밀리가 나와서 한글 통신이 가능해지기도 했다. 항공사에 근무할 때 항공업무 속성상 전세게 지점과 교신해야 했다.

 




source, wikimedia commons


테렉스의 교신문은 글자 한 타 한 타가 모두 돈과 직접 연결된다. 부서에서 유능한 직원과 보통직원은 통신으로 돈을 쓰는 방법이 다르다.

먼저 유능한 직원의 경우 텔렉스 내용을 간소화, 명확화, 최소화한다. 그래서 텔렉스를 영어로 보내면 최고로 짧게 내용이 된다. 쉽게 말해 한 장짜리 텔렉스가 된다. 반면에  평이한 친구들은 한글을 소리 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써서 보낸다. 거의 다 그랬다. 예를 들어본다.


대개 첫 문장은 아무 필요도 없는 '귀부서의 발전을 빕니다' 하는 내용을 쓰기도 한다. 이걸 영어로 쓰면 이리된다. Gui bu seo eoi bal jeon eul bib ni da. 지금 보면  한심한 영어 표현이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는 최고로 업무체계가 국제적이라는 항공회사 본사 참모부서에서 전세계로 타전하는 문서의 패턴이 이러했다. 우리 부서에서도 이런 스타일로 오랫동안 교신을 주고받았다. 보내진 텔렉스는 지하 해저 케이블을 통해서 전 세계로 주고 받는다. 국내 회사들이 참여할 공간이 없는 주로 서방 회사들이 사용한 만큼의  비용을 받아갔다.


지금의 데이터 사용분 만큼 바이트에 비례하는 것처럼 이다. 알파벳 자모한자당 몇 센트를 받는다.

그러니 한글로  서류를 영어 자모로 풀어서  텔렉스 타전 직원은 영어 원문으로 직접 보내는 직윈보다 수배의 비용을 쓰고 있었다. 우리 부서에 있던  직원은 가끔 영어 원문으로 직접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응답 회신은 다시 한글 번역판 텔렉스였다. 


사실 이리하는 데는 영작실력도 있었지만 직급 서열을 따지는 과공지례가 작용했다. 대리가 상대방 부장에게 보내면서 과공의 표현을  할 수가 없다. 특히 예를 들자면 새해 명절에는  '갑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앙망드립니다' 하는 과공의 표현을 영어 자모로 작성하니 타전 비용도 시간도 훨씬 많이 들었다.


‘Happy new year’ 대신에 ‘Gap jin nyeon sae hae bog manh hee bad eui si gi reul ang mang deu rib ni da’로  것이다. 12자면  문자를 58자로 보내는 것이다.  문자를 텔렉스를 보내려면 정말 손목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다른 연관 문제도 있다.  상사나 경영층에 올리는 보고를 두루마리 텔렉스 원문으로 그냥 드릴 수가 없다. 이를 보고서로 다시 읽기 쉽게 한글로 재작성하여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다. 이것은 전부 부하직원들 몫이다.


어떤 상사들은 퇴근 시에  텔렉스를 당장 보내라고 하고 그는 나간다. 남은 당당자는  텔렉스를 qwerty 자판을 보고 한자 두자 찾아서 두들기며 보낸다. 참고로 쿼티 자판은 영타를 쓰지 않는 시람들은 자판을 하나하나 두들겨야 되었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보내준 원문을 이해 못 하는 단어가 있을 때는 궁리 궁리하여 해득하지만 끝내 모르면 “ 페이지 위에서 12줄째 QTE btw UNQTE  무슨 말인지요”라고 문의를 발신자에게 보내야 한다. (QTE, UNQTE는 인용시 전후에 쓰는 quote, unquote의 약어이다) 그러면 대략 다음날 답이 온다. “by the way 약어입니다하고 답신이 온다. 이걸 보면은 맥이 풀린다.


하나의 방식이 지배하던 시대는 그리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이 들어온다. 마치 이민족이 지배하던 시기에 익혔던 생활패턴은 새로운 지배자가 오면  바뀌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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