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창조적 파괴라 할까)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모두의 생각이 넘친다. 어찌 보면 진행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좋은 면이고, 다른 하나는 우왕좌왕하며 혼돈이 일기도 한다.
정치는 그들만의 영역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지구상의 근현대사를 보면 약간의 시기를 두고 어김없이 이상한 부유물이 떠 오른다. 가장 이상한 극을 보이는 사람은 정치 지도자이다. 그들이 생겨나면 틀림없이 괴상한 꼴을 보게 된다. 전쟁도 나고 내란도 생기며 패가 갈려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적 감정을 배출한다.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기고 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린다.
잘못된 정치 지도자가 하나 만들어진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사람의 전적인 책임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특히나 왕조국가가 아닌 현대의 지도자는 만든 것은 일반 국민들이다. 그로 하여금 국가를 운영하는 최고 요리사로 만든 책임은 그를 뽑아준 사람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를 잘못 뽑아 생기는 연속적인 혼란은 의외로 오래간다. 한번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는데 이 작업이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다. 한번 절대 권력이 힘을 잃으면 대기하고 있던 다른 잠재적 힘이 구체제를 대체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시행착오와 혼란은 주로 개인과 정파적인 이해득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국가의 미래와 발전방향에 일차적 초점을 맞추는 의로운 결정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프랑스 대혁명은 너무나 많은 혼란과 피를 보며 약 4년 이상을 허비하고 일단락이 되었다. 그 기간 중 너무나 많은 국민들이 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되었다. 민초들이 겼은 그 후유증은 너무나 심대했다. 다행히 시간은 여전히 흘러 세월이 약이 되었다. 피의 기억이 멀어지고 망각을 통한 잊음의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21세기이다. 현재는 상황판단이 잘 될 수 있는 올바른 정보와 사람들의 의식 수준 그리고 상호 소통의 채널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는 세상이다. 다시 과거와 같이 내란이나 폭동이 일어나는 국가 혼란기가 재연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분명코 암울하게 된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다시 맞추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대승적인 판단이 중심이 되어 정치적 지도자들이 개인적 유불리를 넘어 정상적인 국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류 중 하나는, 정치적 의견제시를 삼가자는 주장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정치적 발언이나 주장은 정치적 리그에 속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이나 단체 모임에서도 정치적 의견을 하면 의례 찬반이 갈려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그룹으로 갈라진다. 그래서 의견 제시를 하지 말자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받는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올바른 해결책 인지는 의문이 든다.
내 견해부터 말하면, 나는 정치에 대한 의견 참여를 하자는 주의이다. 현대 정치인들은 외부 여론에 배우 민감하다.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신경을 안 쓰는 처신은 과거 전제주의 시절에나 가능한 행위이다. 지금은 정치지도자에 대해 국민 지지도를 측정하는 정기적 여론조사를 행하고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국민 여론이 매우 부정적일 때는 진행이 중단되거나 대폭 수정을 하기도 한다. 이게 올바른 민주정 운영 방식이다.
어디서나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들은 많다. 그중에서는 개인이 가진 사회참여의 한계를 체감하고 입법을 통한 더 효율적인 수단으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것이 좋은 진입이라 여긴다. 정치인이 되어 사회를 개조하고 발전시키는 참된 일꾼을 우리가 마다해서는 안 된다. 나와 우리를 대신하여 옳은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도 정치 참여를 강조한바 있다. 그가 한 말을 축약해 본다. “정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입니다. 정치가 공동선에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에게 사형을 내린 빌라도처럼 손만 씻고 뒤로 물러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함으로써 통치자들이 제대로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옳으신 말씀이다. 참여하지 않고 그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하면 안 될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한 말도 되새겨 봐야 한다. 정치를 멀리하면 어떤 결과가 있는지를 말해준다. 작금의 한국적 정치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라 여겨진다. 정치에 관심 없으면 가장 저질적 인간들로부터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2500년 전에 그가 설파한 그대로가 지금의 한국이 된 건 아니까. 그러나 요즘 다시 정치 참여도가 고조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발언이란 무엇일까. 그들 리그에 있는 사람들이 개인이나 정파적 이득을 위해 하는 발언이 아닐까. 우리 개인이 어떤 정치적 이득도 없이 옳고 그름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이제 더 많이 해야 할 시기로 본다. 예로부터 가뭄이 들어 농사가 잘 안 되어도 나라님이 덕이 없어서 그랬다고 그를 원망했었다. 이것이 민초로서 하는 당연한 반응이다. 이것을 무슨 정치적 발언으로 볼 이유는 없다.
식당 주인이 “IMF 보다 더 장사가 안돼요” 라거나 “일자리가 없어서 먹고살기 힘듭니다” 등등 모든 것을 호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세금을 내는 현대의 우리들이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목소리를 제한해야 할 이유는 지금도 미래도 없다.
어떤 고전 경제학자가 말했다. 창조적 파괴는 좋은 것이라고. 힘들 때가 세상을 바뀔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다. 이 참에 아예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