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총 사냥의 추억

by evan shim

어릴 적 엽총 사냥을 한 추억


부친이 총포사를 하여 중학교 때부터 나는 총과 친할 수밖에 없었다. 주로 하는 일이 총포사 직원역할을 했으

니, 눈만 뜨면 총을 닦고 엽총 실탄을 만드는 것은 주로 나의 역할이었다. 조금 더 성장하여 고등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냥을 즐겼다. 부친이 처음에는 410번 (410-bore) 이라는 가장 작은 엽총을 주었다. 이 총을 매고 참새와 비둘기 등을 주로 사냥하였다. 410번 탄피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구경은 군용 라이플인 M1 실탄과 약실의 구경이 똑같았다. 좁은 탄두 부분은 늘려서 평평하게 개조하여 실탄을 만들었다. 뇌관을 끼우고 밑화약과 본화약 그리고 송탄막(오꾸리)을 넣은 후에 작은 구경의 원형 납탄두를 넣으면 된다.


원형의 엽총 납탄두는 대상 사냥물에 따라 크기가 구분된다. 곰이나 맷돼지 사냥용의 하나 짜리 탄두도 있고, 노루나 고라니용은 28개 정도의 중간 납탄두를 쓴다. 비둘기나 작은 조류용은 9호탄이라는 아주 작은 산탄을 쓴다.



약 1년 정도 이 총을 사용해보니 나중에는 성인용 12번 엽총을 갖고 싶었다. 표준 엽총이 12번(12 gauge)이다. (게이지 번호가 크면 총구 직경이 줄어든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생 처지여서 아버지께 그 말을 드리기가 어려웠다. 때때로 야외에서 성인용 엽총을 사격해 보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집에 여러가지 엽총이 있어서 거의 다 사격연습을 해 보았는데 아버지는 수평 쌍대(side by side) 엽총을 주며 사냥해 보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영국제 홀랜드&홀랜드 수평쌍대가 많았다. 이 수평쌍대의 제일 편리한 점은 휴대하는데 가볍다는 데 있다. 5연발 브로우닝이나 레밍턴 모델 1100 에 비해 휠씬 가벼워서 나에게는 가장 다루기 좋은 총기로 여겨졌다. 2개짜리 쌍대 총열은 한 쪽은 장거리용 총구이고 다른 하나는 단거리용으로 조정되어 있다. 총열 끝 부분을 오무려 놓은 초크(choke)라 한다. 이후 브로우닝에서 상하(superposed, over and under) 쌍대의 신제품이 만들어졌다. 이 총은 나중에 크레이 사격용으로 인기가 많은 총기이다.


사냥철은 겨울철에 시작된다. 거의 11월부터 2월 말 까지가 정부에서 공표된 사냥시즌이다. 이 한 계절이 총포사로서는 최고의 바쁜 계절이 시작된다. 물론 하계절에 논에서 하는 뜸북이 사냥이 있지만 많이 제한적이었다. 나는 저녁을 먹은 후에 직원들과 함께 거의 밤 11시까지 엽총탄을 제작해야 했다. 거의 많을 때는 약 500 발 정도를 만들어야 했다. 이런 과정이 겨울 내내 이루어지는 루틴 생활이었다. 사실 엽총의 장탄 하는 과정은 그리 어려운 과정이 아니다. 엽총에 사용하는 무연화약이 다양하기 때문에 성분에 따라 화약 양을 조절하여 발사 테스트를 해야 했다.


엽사대회 (부친은 전방 좌측 3번째)


화약의 Gram 수를 조정하여 장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야외에 가서 테스트 발사를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한 화약의 양을 선택하여 화약의 gram 양을 최종 결정한다. 약 50 미터 전방에 하얀 종이를 부착하여 발사된 탄막의 형성도 보아야 했다. 화약이 적으면 유효사거리가 줄어들고 반대로 화약의 양이 너무 많으면 총에 무리가 되고 심하면 총기 약실이 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아버지기 다 하지만 나도 당연히 몇 발의 사격 테스트를 하며 의견을 말 할 때도 있었다.


일부의 엽사들은 엽총 장탄기를 구입하여 직접 총탄을 제조하기도 하는 데 정해진 화약량을 제재로 지키지 않아 총기의 손상을 입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일부 맹수류를 사냥하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 많은 양의 화약을 의도적으로 제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곰이나 맷돼지 사냥을 하는 엽사들인데 전국적으로 깊은 산에서 발을 재고 사냥을 하는 전문 직업 엽사들이다. 해마다 아버지가 주최하는 엽사대회가 열린다. 총포사를 하니 당연히 사냥대회를 하는 것이다. 한 군데 사냥처를 지정하여 참가한 엽사들이 당일 마감 시간까지 잡은 수확물로 등수를 매기고 시상을 하는 대회이다.


아직 어렸지만 나도 당연히 엽총을 들고 사냥 대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꿩이나 토끼 등을 한 두마리 수확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사냥을 잘 하는 분들은 당일 노루나 고란이 한 두마리에 꿩, 토끼등을 많이 사냥한 분들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엽사 2분은 항상 팀프레이를 하는 분이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이들은 평상시에는 주업이 농사이지만 겨울 철에는 오히려 사냥으로 더 큰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농업 비수기를 제대로 활용한 것이다. 특히 노루등의 발을 잘 잡고(노루가 이동시 흔적 추적을 한다는 것이다. 노루 똥이나 심지어 근처에 묻은 노루털도 확인한다) 노루 목을 잘 재는 전문 직업 엽사였다. 짐승들이 다니는 목은 동물들이 이동하면서 거의 대부분 통과라는 길목이다. 한 분은 밑에서 올라 오고 또 다른 한 분은 목에서 대기하는 방식으로 주로 사냥을 진행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주로 학교 등교 전 사냥을 했다. 겨울철 아침이 오기 전 어숨프레 할 때 약 5시정도에 집을 나간다. 주로 자전거 타고 사냥견을 데리고 갈 때가 많았다, 엽총은 분해되니 총 케이스에 매고 가면 되었다. 어떨 때는 그냥 어깨에 엽총을 메고 가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시기였다. 허리에는 15 발의 엽총 탄 벨트를 두르고 가기도 하였다. 엽총 실탄도 내가 만들었다. 12구경 엽총에 사용할 뀡잡이용 실탄은 주로 4호탄을 쓴다. 납탄두가 좁쌀보다 조금 큰 크기이다. 그리고 오리용 탄은 조금 더 큰 BB 납탄두를 넣고 노루용은 SG 탄으로 더 큰 것을 사용한다. 탄환을 허리에 많이 두르면 무거위서 일부만 채웠다. 긴 하천의 뚝방 언덕을 따라서 자전거로 약 15-20분 정도 가면 대대라고 하는 야산 지역이 있다. 이곳이 나의 전용 사냥터이다.


나와 동생이 사격장에서 한컷


지금은 순천만 국가정원이 있는 부근이다. 하도 여러 차례 사냥을 나오니 어떤 코스로 한바퀴 돌면 어디 야산에서 뀡이 있겠구나 하는 예감이 생긴다. 그런데 이 예감이 잘 맞았다. 꿩 사냥은 날치기라는 방식으로 사격을 한다. 즉 꿩이 날아가게 하여 총을 발사하는 것이다. 뀡은 땅에 기어 다닐때는 날게에 가려서 좀 먼 거리에서는 사냥하기가 쉽지 않다. 날개가 겹겹이 되어 총탄을 맞아도 바로 죽지 않는다. 이를 엽사들은 복(伏)치기라고 부른다. 이렇게 사냥을 하여 수확물이 1-2 마리가 되면 바로 돌아온다. 가끔 야생토끼가 보일때도 있었다. 이렇게 사냥을 마친 나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또 학교로 갔다.


대학시절 초기에 겨울방학이면 나는 당연히 사냥을 즐겼다. 같은 과 학생들이 순천에 있는 나의 집을 찾아 사냥의 경험을 하기 위해 제법 방문을 하기도 하였다. 그 때 방문했던 친구들이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만나면 그 때를 회상하기도 한다. 잡은 수확물은 산고기를 주로 요리하는 식당에서 전골이나 볶음 등의 요리를 하여 주었다.


그러나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조수보호라는 미명아래 수렵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었다. 실제적으로 당시 체재 위기상황에서 민간인 엽총 총기를 묶어 놓고 유신체재를 공고히 하자는 것이 목적이었고 조수보호는 부수적 핑계였다. 조수의 멸종을 우려할 만한 우려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모든 민간인 총기는 경찰서에 유치를 해 놓아야 했다. 일부 사람들은 미등록된 총기로 밀렵을 하기도 했다. 반발을 무마하고자 정부는 도단위 엽장을 하나씩 풀어놓고 순환방식으로 일부 수렵을 허용하였다. 긍정적 측면에서는 금렵조치로 조류를 포함한 산짐승의 개체수가 많이 이후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조준경 달린 라이플 사격하는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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