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앰, 항공 거인의 탄생과 몰락

catch me if you can

by evan shim

Pan Am, 하늘의 제국 - 캐치 미 이프 유 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현한 영화에 나오는 제목이다. 제목이 말하듯 재주 있으면 나 잡아봐 하듯이 최초의 가장 거대한 하늘 제국을 만든 전설적 항공사이다. 당시 많은 방문객들이 뉴욕의 랜드마크인 Pan Am 빌딩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중 하나가 나였지만.


팬앰의 로고는 누가 봐도 대우그룹의 기업 로고와 매우 닮았다. 항공사에 있을 때 관련된 추억 한 토막이다. 김우중 회장이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할 즈음이다. 도착할 게이트로 이동하는 중에 마침 팬앰의 항공기가 창문 옆으로 보였다. 퍼스트 클래스를 담당한 선임 여승무원이 김우중 회장께 작별 인사를 하던 중 농담 삼아 대우의 로고와 팬앰의 로고가 아주 비슷하다고 김 회장께 말을 했다. 쉽게 말해 카피한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자 김우중 회장이 화가 나서 한참 여승무원을 쳐다보았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 여승무원에게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했느냐고 한 일이 있었다. 당신이 대우 회장이라면 그 소리 듣고 좋아하겠느냐고 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거대기업은 로고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처지가 되었다.


1970년 말 팬암 항공사를 탑승한 추억이 있다. 항공사 승무원 시절이다. LA에서 취리히를 가는 항공편에 탑승을 했다. 장거리 비행이다. 나 혼자만 탑승한 것이 아니고 승무원 한 팀이 모두 팬암을 타보았다. 다들 외국계 항공사 이용은 처음이었다. 스위스를 가는 목적은 취리히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받아서 서울로 와야 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긴급히 이 비행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한 팀이 단체로 타 항공사를 타는 일은 아주 생소한 일이다. 아마도 승무원 비행 편조 업무상 미스 이거나 특별기 생성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항공사 비행 편조 직원이 손으로 승무원 비행 스케줄을 짜던 때라 뜻하지 않게 실수가 생길 때도 가끔 있었다. 물론 나중에 컴퓨터 편조로 바뀐 다음 해결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즐거워하며 비행을 즐겼다.


자국 항공사만 타다가 세계 최대 항공사 팬앰을 타보니 다양한 것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 승무원들이 기내 서비스를 어떻게 하며 기내식과 음료 서비스는 어찌하는지 다들 음미하고 있었다. 기억나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승무윈들이 안전에 대한 기내 규칙은 아주 철저히 잘 수행하는 것이 보였다. 승객의 좌석벨트 착용이나 짐 보관 상태 점검 등은 엄격히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목적지인 취리히에 도착했다. 같이 간 선배가 사용하던 기내 담요를 기념으로 가진다며 가방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나도 그대로 따라 했다. 대한항공 것보다 아주 고급스럽고 색상도 좋은 기내담요라 여겨졌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해외 항공사 이용은 이루어졌다.


Source wikimedia commons


팬앰은 1927년 항공운송을 시작한 미국 항공사이다. 이 시기부터 미국과 전 세계 항공 운송사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던 시기이다. 미국에서는 노스웨스트, TWA, American, United 등의 민간 항공사가 설립되던 무렵이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정부가 항공사 최대 지분을 가졌다. 미국에서 1920년대는 여객운송은 없었고 우선 우편물 운송을 주로 했었다. 이후 항공기의 신형 모델이 개발됨에 따라 본격적 여객운송이 개시되었다. 팬앰은 2차 세계대전 시기 군병력과 군수물자의 운송을 거의 전담할 정도로 성장했다. 미 대통령 전용기가 없던 시절에 대통령이 해외에 순방을 가면 팬앰 항공기를 이용하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노선망과 항공운송 체제를 갖춘 완벽한 항공사가 되었다. 남극대륙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 미 취항지가 없을 정도로 독점적 운송망을 갖추었다.


카터 행정부 때 미국은 자국의 항공 지배력이 전 세계 규모를 넘어섰다는 판단하에 세계 항공자유화 전략을 선언했다. 항공 규제완화 정책(The Deregulation Act)이다. 그러나 팬앰은 정부보다 먼저 항공 세계화 정책을 스스로 창조한 역량 있는 항공사였다. 항공기를 제조하는 보잉과 더그러스 항공사 제작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져서 항공기 주문 시 항속거리나 경제성의 요청도 독자적으로 했고 심지어 새로운 항공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필요한 요구를 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항공기가 B747이었다.


젊은 여성들은 하늘색 승무원 유니폼을 입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었다. 팬앰을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많은 최초의 기록들이 따라다녔다. 최초의 제트항공기를 운용하는 항공사에서 시작하여 세계일주노선, 컴퓨터 예약시스템(CRS), B707과 B747 취항, 비즈니스 클래스 도입, 자가 공항터미널 보유, 항공서비스 표준,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팬앰빌딩 등 너무나 많은 최초의 연속이었다. 당대에 코카콜라를 이어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세계 기업이었다. 1위와 2위의 차이가 너무 커서 마치 결코 물속에 가라앉지 않는 불침 전함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은 없다. 무리하면 이겨낼 장사가 없다. 확장에 확장을 계속하다 보니 마치 브레이크 없는 성장이 영원한 줄 알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위기가 시작되었다. 규제완화 정책으로 진입장벽이 허물어진 틈을 타고 항공 경쟁이 치열해졌다. 중동전쟁과 유가 폭등으로 항공사 운영에 커다란 차질이 생겼다. 배럴당 2.9$, 11.6$, 40$ 로 점차 가격이 인상되어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제정위기가 왔고 여기에 반미 테러와 최악의 항공기 사고는 계속 터졌고 항공사 운영이 최대 위기에 몰렸다.


1981년에는 위기를 탈출하려고 팬앰의 본사 건물을 매각했다. 보험기업 Met Life에 팔렸다. 과거 근처를 지나다 보니 건물 소유주의 새 간판으로 바뀌었다. 계속되는 재정위기는 결국 팬앰을 파산 신청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가진 항공기 226대는 미국의 아메리칸 항공, 델타항공, 브래니프 항공 등과 타국의 항공사에 팔려 나갔고 뉴욕의 팬앰 자가 터미널도 델타에 넘어갔다.


팬앰은 창립된 지 64년 만에 파산하여 백기를 들었다. 그 기간 동안 경쟁자 없는 세계적 독점 상태에 젖어 있었다. 오랫동안 습관이 된 체질을 변화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다. 오픈스카이 정책으로 자유경쟁이 심화되는 영업 환경 변화를 이겨내지 못했다. 계속 성장 일변도여서 반전을 예상 못한 비극이었다.


팬앰은 지금 사라졌지만 그들이 쌓아 올린 항공운송의 혁신적 업적은 전 세계 항공사들의 운영 자양분이 되어 현재 항공산업 운영체재가 만들어진 것이다. 팬앰의 유산으로 항공운송 산업은 더욱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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