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왜 의자대신 거친 길을 택했을까?

(나는 걷는다)

by evan shim

1.

어제 아침 작은 방 스쾃 기기에서 운동을 마치려 하는 참이다. 70개를 운동하고 나가려던 순간이다. 집사람이 안 하던 질문을 한다. 스쾃를 몇 개 하면 무릎이 아프단다. 자세가 이게 맞느냐고 물어본다. 내가 조금 상세하게 준 답변은 이러했다. “무릎이 아픈 사람에게도 의사가 스쾃 운동 처방을 한다. 처음에는 통증이 있어도 계속하면 안 아프게 된다. 처음에 한 10개에서부터 시작해 보라. 곧 20개, 30개가 된다. 나도 처음에 한 20개가 지금은 70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상체는 곧바로 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가려고 하면서 “나이 들어 요양원을 안 가려면 열심히 이 운동을 해야 해”라고 덧 붙였다. 말은 이리했지만 최종적으로 물을 먹고 안 먹고는 말의 결정이라 생각했다.


오후에 퇴근을 하려던 참이다. 갑자기 걷고 싶었다. 신도림역에서 집까지 거리는 약 6.5 km 정도 걸린다. 한 1년 전부터 주 2-3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한 겨울에는 쉬다가 기온이 좋아지니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보라매공원에서 출발하는 이 구간은 언제나 나의 자전거 루틴이 되어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사람이 다니는 보행 구간은 바로 곁 자전거 길과 연결된 보행자 구간이다.


퇴근 시간과 겹쳐서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도림천 보행로에 들어섰다. 나에게 있어 걷는 일은 바로 다른 작업과 결합한다. 바로 방해받지 않는 사유의 시간이고 묵언의 타임이다. 눈을 돌리니 개천에서 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저 놈들이 안 보이는 물속에서 열심히 두 발로 발짓을 하고 있겠지 하는 연상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두발에 대한 연상 발전은 걷는 내내 나의 뇌리에서 작용을 했다. 그리 한시간 정도 걷는 사유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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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틀 전에 책을 빌렸다. 제목은 ‘나는 걷는다’ 1권(아나톨리아 편)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책이다. 그는 유명 작가가 아니어서 그런 책을 고른 것이 우연이었다. 도서관의 검색어를 ‘실크로드’를 찾다 우연히 떠 오른 책이다. 일단 3-4권을 골라 놓고 그중에서 다시 읽을 책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다. 최종 선택은 앞과 뒤의 설명그리고 목차를 보고 선정을 한다. 이상한 작가가 스스로 행한 실크로드의 순례를 다룬 자전적 다큐먼터리 소재였다.


흥미가 생겨 집에 와서 보게 되었다. 실크로드를 발로 걸으며 엮은 3권짜리 시리즈였다. 책 페이지 수도 제법 두꺼운 약 440 페이지였다. 사진도 하나 없고 온통 글로만 빽빽이 들어 찼다. 이틀 저녁에 걸쳐 읽으니 약 330 페이지를 보는 중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신문사 기자로 퇴직을 하고 62세에 혼자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4년에 걸친 여정을 소화한다. 어찌 보면 은퇴 후의 상실감을 실크로드 순례로 승화시켜 두 발로 도보여행을 완수한 경이로운 스토리이다.


거리상으로 12,000km를 전혀 차를 타지 않고 발로 실크로드 길을 찾아 순례를 한다. 고대의 현장법사나 혜초와 같은 구법승들은 이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숙명이라 여겼지만 현대의 그 누구도 이런 시도는 처음이었다. 그는 최소의 준비물을 갖춘(약 15kg 배낭)채 끝없는 길을 걸었다. 그는 1권에서는 터키에서 이란 구간의 길을 가며 보고 만난 사람과 실크로드의 흔적을 찾아 이야기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에게 절대 음식값을 받지 않으려는 순박성을 보여 주었다.


그럼 간단히 내가 이 작가의 책을 고른 이유를 약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근래 들어 수년째 실크로드 트랙을 찾아보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처음에는 책을 보며 상상을 키워왔다. 제법 많은 책을 보았다. 새어보지 않았지만 약 40권 너머를 본듯하다. 실크로드와 연관된 유목민의 시대순 흥멸한 역사와 지역에 따른 책을 중심으로 보았다. 중국의 고대/근대 역사, 막북지역 북방민족들의 흥기와 소멸, 서역으로 이동한 유목루트,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유목민족사 그리고 당시에는 서하라 불렸던 하서주랑과 둔황 근처의 사막제국들, 불교와 이슬람 종교 등의 전래역사 등등을 보아왔다.


그렇게 본 책들은 나를 그곳으로 이끄는 기관차가 되었다. 역사 현장을 보고 싶도록 만들었다. 몽골도 여러 차례 갔었고, 중앙아시아를 갔고 이번 여름에는 서아시아를 간다. 또 중국 내 실크로드 등이 마지막 여정으로 정해졌다. 그 근저에는 전체 실크로드가 있고 내가 생각나는 대로 부르는 칭기즈칸 원정 트랙이 있다.



3.

다시 처음에 했던 두발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젊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가 어디라 생각하느냐”이다. 아마 청년들은 주저 없이 두뇌를 꼽을 것 같다. 지식, 창의성, 자아실현, 성공의 핵심이 그곳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뭐라고 말할까. 인생은 항상 삶의 본질과 형식이 변화한다. 세월이 흐르고 머리카락이 희끗해지면 우리는 신체 중 가장 높은 곳(머리)이 아니고 가장 낮은 곳(발)에 집중하게 된다.


노년에게는 두뇌보다 발이 가장 중요한 부위가 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주장하는 본론이다. 노년에게 어디를 쉽게 갈 수 있는 이동권이 곧 노인의 인권이다. 머리가 아무리 명석해도 내 발로 일어설 수 없으면 나의 세계는 침대 위나 휠체어 안으로 좁아진다. 노년에게 공포의 대상이 있다. 요양원이다. 과거 유럽에는 몽골족이 온다 하면 울던 아이가 뚝 울음을 그친다는 고사가 있었듯이. 나이가 들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 해야 하지 않을까.


요양원 행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척도는 무엇일까. 인지능력 보다 보행 가능여부인 경우가 더 많을 듯하다. 두 발이 힘찬 발질을 한다는 것은 노년의 자유와 존엄의 상징이다. 건장한 내 발로 화장실을 가고, 산책을 즐기며, 자장면을 먹으로 가까운 식당을 찾아가는 자유, 사소한 듯 하지만 노년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최후의 만리장성 보루처럼 된다.


즉, 발은 우리를, 인생을 지탱하는 굵은 뿌리이다. 젊어서는 머리를 채우기 위해 발을 움직이지만 나중에는 머리를 맑게 유지하게 위해 발을 움직여야 한다. 호모 사피언스(homo sapiens)는 건장할 때 ‘생각하는 인간’이었다면, 이제 ‘걷는 인간’(homo ambulancs)이 되어야 할 듯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티킷은 무엇일까. 노년의 자유는 두 발에서 나온다, 올리비에가 길 위에서 두 발로 느꼈던 그 해방감이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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