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 속담의 유래

흉노와 천고마비의 연관

by evan shim


가을이 두려운 사람들



요즘 가을 하늘은 보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흔히들 천고마비라 하는 풍요의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계절이다. 어릴 적에 들은 이 말은 추수하여 식량 걱정이 없던 좋은 계절을 뜻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을 모아 놓고 가을 운동회 훈시를 할 때도 여김 없이 인용되는 문구였다. 속담이 주는 부정적인 의미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원래 이 속담이 유래된 배경은 단지 좋은 계절을 찬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중국 북방에 거주하는 농부들은 가을만 오면 걱정이 많다. 바로 장성 넘어 두려운 흉노족이 쳐들어올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이들이 침략하면 그해 거두어들인 수확물을 뺏기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하면 그들의 생명까지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북방에 있는 중국의 농부들은 해마다 이 철이 되면 북방을 처다 보며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천고마비라는 말은 그들에게 아주 무서운 말이 되었다. 울던 아이도 천고마비 경고와 흉노족 소리를 하면 울음을 뚝 그친다 하였다.


왜 그토록 하늘이 쾌청한 가을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로 유목민들의 생활관습 때문이다. 유목민들에게 초지는 그들의 생존이 달린 환경조건이다. 초지가 없어지거나 황폐화되면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 유목민이다. 초지에 의해 말을 먹어야 하는 북방 유목민들은 빨리 찾아오는 가을 추위에 벌써 한해 일거리는 중지가 된다. 이 유휴기를 이용하여 주변의 다른 나라 변경을 찾아 노략질 등을 하거나 원정을 다니는 것이 그들의 생활 패턴이 되어왔다. 유목 민족들에게 공격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통통하게 잘 먹은 상태로 힘이 넘치는 말이다. 즉 최고의 이동성 전쟁준비가 마쳐진 상태이다. 가을에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이듬해 봄이 오면 그들은 다시 초지로 돌아온다. 초지가 살아나면 다시 말과 가축을 키우는 유목생활이 계속된다. 한 부족의 기회는 다른 민족에게는 악운이 되는 것이다.



흉노족에 대해 사기에 기록된 이야기를 소개하자고 한다. 나는 역사 전공은 아니지만 유목민족에 대해 흥미를 가져 공부를 하게 되고 알게 된 지식의 조각들이다. 흉노 지도자 중에서 가장 큰 업적을 가졌던 묵특 선우 이야기이다. 다르게는 묵돌이라고도 부르며 선우라는 명칭은 그들의 영도자를 의미한다. 그가 악조건을 이겨내고 영도자가 되는 과정이 독특했다. 마치 칭기즈칸이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칸이 되는 과정과 비슷했다. 듣기에 좀 섬뜩한 내용이다. 그는 최고 권력을 가지려고 수하의 용맹한 부하들을 모아서 친위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부하들 훈련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훈련과정은 그가 엄청 아끼는 명마이다. 묵특이 먼저 신호용 화살을 던지면 그의 부하들은 즉각 그 대상을 향해 모든 화살을 쏘아야 한다. 그런데 부하들은 그가 그토록 아끼는 명마를 향해 화살을 쏘지 않고 주춤했다. 그러자 책임자를 명령 불복종으로 현장에서 죽였다. 부하들에게 했던 두번째 훈련 과정에서 대상은 그의 부인이다. 부인은 묵특이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신호용 화살을 부인에게 먼저 향하자 이번에도 부하들은 차마 화살을 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부인을 사랑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전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진 부하를 바로 죽였다. 이렇게 충성 훈련을 한 부하들은 두려움에 떨어 절대 그의 명령을 어기지 않게 되었다.


그의 인생을 건 마지막 신호용 화살의 대상은 그의 아버지 선우였다. 그는 마지막 신호용 화살을 아버지를 향해 쏘았다. 이 행위는 완벽한 권력 찬탈 행위이고 반란이었다. 결과는 전과 달랐다. 부하들은 어떤 주저함도 없이 부왕을 향해 모든 화살을 쏘았다. 어느 누구도 망설임이 없이 묵특의 지시를 따랐다. 이리하여 마침내 스스로의 의지로 최고의 권력자인 선우가 되었다. 목적을 위해서 어떤 행위조차 해대는 냉혹한 인간이다.


흉노족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던 때에 가장 강성한 제국이 되었다. 전국시대 진, 조, 연 3국은 모두 흉노를 두려워하여 흉노를 막기 위한 경계지역에 긴 장성을 설치하였다. 이 장성을 다시 연결하여 지금의 만리장성으로 확대 연결한 것은 진시황제였다. 그만큼 북방 흉노는 항상 두려운 강적이었고 경계 대상 중 최고였다. 그 이후에 한나라로 계승된 중국에서도 흉노는 계속 번창하여 지역 맹주가 되었다. 모든 나라가 흉노에게 많은 조공을 바쳤다. 그만큼 강대국이 되었다. 통일된 진나라도 한나라도 모두 예외가 없었다. 한나라는 심지어 흉노 제국과 협상을 맺어 국경을 만리장성으로 하자고 하였고 공주를 묵특에게 시집보냈고 양국은 형제의 동맹을 맺기도 했다.


묵특은 자기들 위성국 대하듯 한나라 유방이 죽고 여후가 혼자 남았을 때 정상 국가 간에 할 수 없는 이상한 편지를 보낸다. 나도 당신도 외로우니 한번 데이트를 하면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엄청난 도전적인 내용이지만 그들과 전쟁을 일으켜도 승산이 없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후는 묵특에게 선우님의 요청을 못 받아들여서 미안하다는 답신을 보냈다. 한나라의 자존심에 먹칠을 한 역사적 사례이다.


그러다가 한무제 때 대규모의 흉노 정벌 원정을 수행한다. 결과는 양국의 상호 피폐 국면이었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을 오래 수행하다가 국가의 존망이 어려운 상태까지 돌입했다. 흉노도 2분할, 4분할로 나누어지고 결국 소멸의 길로 갔고 한나라 또한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어졌다. 결국 수나라로 바통을 넘겨주어야 했다.


흉노족은 2세기경 소멸되었지만 그들의 일부(북흉노족)는 천산산맥을 넘어 서양으로 유입되었다. 거기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훈족은 그동안 힘을 모아 주변국을 침공하기 시작한다. 바로 4세기에 유럽을 뒤흔든 유목 제국이 일으킨 광풍이었다. 그들은 이제껏 본적도 들은 적도 없던 무리가 마치 태풍처럼 쳐들어와서 로마를 뒤흔들고 게르만 민족을 대이동 시킨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그들의 정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바로 훈족이다. 그들의 핵심 군사전술은 기마군단 이었다.


서양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막연히 동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흉노와 훈족의 직접 관련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DNA 유사성도 있었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학자마다 다르게 주장하는 것이다. 아마도 서양의 입장에서는 동양에서 온 야만 유목민족이 그들을 유린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존감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흉노와 훈족은 같은 뿌리다 하는 것은 정립된 역사가 아니고 여전히 이견이 많고 풀리지 않는 가설 상태이다.


세상은 또다시 돌았다. 그 후 천년이 다가올 무렵 몽골제국이 다시 유럽을 뒤흔들었다. 더 큰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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